살만 루슈디 '진실의 언어'
살만 루슈디의 소설(악마의 시)과 회고록(조지프 앤턴)을 읽은 적이 있다. 소설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지식이 다소 필요했지만, 회고록은 나보코프 자서전과 함께 특히 재미있게 읽은 작가 회고록으로 기억한다. 그의 창작론, 예술론, 비평, 강연 등을 담은 '진실의 언어'(문학동네)가 출간됐기에 구입했다.
루슈디는 필립 로스, 커트 보니것, 사뮈엘 베케트,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안데르센, 크리스토퍼 히친스, 오사마 빈라덴, 아이웨이웨이, 그리고 배우 캐피 피셔 등에 대한 견해와 인연을 통찰력 있게 풀어낸다. 배경 지식이 다소 필요한 사례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부분만 읽어도 괜찮겠다. (자기는 타고난 작가가 아니라 노력파에 가깝다고 주장하며, 이언 매큐언은 제우스의 머리에서 온전하게 태어난 아테나 같이 천부적 작가라고 비유하는 대목이 재미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언급한 다수의 인물은 그의 부음을 듣고 추모하는 형식으로 쓰였는데, 한때 많은 무슬림의 살해 위협을 받았고 이후에도 정체 모를 습격을 받아 한쪽 눈을 잃은 작가가 그들보다 오래 살아남아 추도문을 쓴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아울러 루슈디는 환상문학, 무신론, 자유 등을 열정적으로 옹호한다. 20세기 문학인, 지식인다운 자세다. 몇 대목 발췌.
환상문학은 장르 소설이 아니라 그 나름의 방식대로 사실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소설입니다. 그저 다른 문을 통해서 진실로 들어올 뿐입니다. 자연주의 소설도 전적으로 도피주의적일 수 있습니다. 칙 릿을 조금만 읽어보면 이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비사실'과 마찬가지로, '사실'이란 것은 세계에 대한 하나의 발상, 세상에 대한 묘사 또는 그림입니다. 심지어는 돈이나 정령처럼 하나의 신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공적인 사건이 사적인 삶에 너무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문학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어야 하며, 소설은 더이상 '마담 보바리'나 '오만과 편견'처럼 전적으로 사적인 삶에 대한 설명에 그칠 수는 없다고 믿어왔습니다.
이 둘(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은 모두 민담과 신화와 우화에서 유래한 비유법을 사용하고, 교훈을 가르치는 것을 거부하며,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을 뒤따르는 많은 사람들보다 이 둘은 더욱 현대적이다. 두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할지 말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삶이 작품의 원재료를 어느 정도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불꽃, 창조적 도약, 실제 단어로의 여정을 만들어내는 것들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