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감정, 넘치는 감정

클로이 자오 '햄넷'

by myungworry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는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은 아들 햄넷이 있었다고 한다. 아들이 죽은 몇 년 후 셰익스피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로 기록될 '햄릿'을 선보였다. 햄넷과 햄릿은 사실 혼용되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영화 '햄넷'은 매기 오패럴의 팩션을 원작으로 한다.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아들 이름을 따서 작품에 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오패럴과 영화감독 클로이 자오는 자식을 잃은 셰익스피어의 슬픔, 이로 인해 빚어진 '사느냐 죽느냐'의 고뇌가 '햄릿' 같이 위대한 작품의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자칫 셰익스피어가 개인사적 비극을 작품의 동력으로 활용한 냉혈한처럼 보이겠지만, 영화 속에서 셰익스피어는 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자신만의 진혼 의식으로 글을 쓴다.


영화 속에서 셰익스피어보다 더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그의 아내 아녜스다. 아녜스는 사실상 영화를 열고 닫는다. 아녜스는 매를 기르고 약초에 해박하며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고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예감이 있고 출산에 임박해 일부러 숲 속으로 가 홀로 아이를 낳는 사람이다. 마녀사냥 시대였다면 딱 '마녀'라 불릴만한 특성이지만, 영화 속 아녜스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감정이 풍부하며 사랑이 많은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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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 시상식에서 주연상에 오를만한 연기다. 제시 버클리는 출산 장면, 햄넷을 잃는 장면, '햄릿'을 관람하는 장면 등에서 접신한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자오는 쇼트를 짧게 끊어가는 대신, 버클리의 연기를 충분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카메라를 활용한다. 폴 메스칼은 '애프터썬'처럼 우울에 빠진 남성을 연기하는데 제격이다. (어쩌다 매스칼은 '글래디에이터2'에서 로마 검투사가 됐을까. 그가 비틀스 전기영화에서 연기하는 폴 매카트니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는 인생의 사이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눅진하게 담아낸다. 젊은 청년들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더 높은 성취를 위해 남자가 잠시 가정을 비우고, 아이를 양육하며 행복하게 지내다가, 예기치 않은 아이의 죽음으로 구렁텅이에 빠지고, 이 때문에 부부 관계도 소원해졌다가, 서로에 대해 작은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과정이다. 삶의 각 과정에서 드러나는 기쁨, 아주 큰 슬픔, 작은 위로가 이어지고, 관객에게 이 감정이 넘치듯 전달된다. '햄넷'은 감정, 감정, 감정의 영화다. 별로 감정적이지 않는 영화를 찍는 듯한 제임스 카메론도 '햄넷'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했고, 봉준호는 "치유받았다"고 했다.


다른 말로 하면, '햄넷'은 영화의 구조나 스크린 바깥으로 확장할만한 화두에 대해선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는 영화기도 하다는 뜻이다. 같은 가족드라마로 묶을 수 있겠지만, '센티멘탈 밸류'와 '햄넷'이 그토록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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