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
**스포일러 있음
트라우마, 가족, 예술, 그리고 인생. 장편 영화 한 편에 이 이야기들을 모두 담아내려는 시도가 가능할까 싶지만, 요아킴 트리에는 '센티멘탈 밸류'에서 그걸 해냈다. '무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거의 모든 장면의 밀도가 상당하다.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와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 릴레오스) 자매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혼하고 집을 나간 아버지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카드)는 유명 영화감독이지만, 10년 이상 영화를 찍지 못했다. 구스타브는 장례식을 계기로 두 딸을 만난다. 구스타브는 연극배우인 큰 딸 노라에게 자전적인 신작 영화의 주연을 제안한다.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간직한 노라는 "아버지와는 진정으로 대화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일언지하 캐스팅을 거절한다. 구스타브의 신작 시나리오는 그의 자살한 어머니와 딸 노라의 이야기를 섞은 듯 보인다. 결국 노라를 생각하며 쓴 역할은 구스타브의 영화에 반한 할리우드 스타 레이첼(엘 패닝)에게 돌아간다. 작품에 스타가 캐스팅되고 넷플릭스 자본이 들어오면서 영화 성격은 미묘하게 변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영화를 찍게 된 구스타브는 별 내색을 하지 않지만, 스카스가드는 베테랑다운 미묘하게 탁월한 연기로 구스타브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다. 노르웨이어로 쓰인 시나리오는 영어로 번안되고, 넷플릭스 투자작이라 극장 개봉도 불투명해 보인다. 역시 오래전부터 활동을 멈춘 옛 친구이자 촬영감독과의 재회도 어려워진다. 노라는 훌륭한 배우지만, 무대 공포증을 앓고 있다. 직업적 고투, 잠복해 있다 불거진 아버지와의 갈등, 자신을 염두에 두고 쓰인 역할이 할리우드 스타에게 돌아갔다는데 대한 복잡한 심경 등으로 노라는 조금씩 무너진다. 그 사이 역사학자인 동생 아그네스는 나치 점령기 체포됐다가 종전 후 풀려난 할머니에 대해 연구한다. 구스타브가 어머니와 딸의 모습을 섞어 창조한 시나리오 속 인물은 대체 누구인가.
사실 줄거리를 요약하고 보면 '예술가 영화' '가족 영화' 구도의 전형이다. 옛 방식에 익숙한 노장이 새로운 시대의 물결에 당황한다. 가족 트라우마와 직면한 딸은 돌파할 방법을 모른다. 할리우드 스타는 유럽과 미국의 방식이 기계적으로 결합된 예술 현장에서 고투한다. 어떤 감독들은 이런 상황에서 '파국'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요아킴 트리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봉합된다. '해결'이 아니라 '봉합'이라고 했다. 영화 현장은 '낡았지만 좋은' 방식으로 되돌릴 수 없고, 가족 간의 상처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현실에 '회귀'는 없다.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다. 그저 행주를 적시며 닦아낼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 자유분방하고 이기적인 아버지는 여러 고초를 겪은 뒤에도 그대로다. 노라의 무대 공포증이 아스피린 먹으면 사라지는 두통 같은 것일 리 없다. 노라는 아버지뿐 아니라 동생 혹은 이성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인다. 노라는 과거 스스로 파국을 내려고 했던 것으로도 암시된다. 놀랍게도 구스타브는 자신이 떠난 사이 노라가 저지른 일을 알지 못하면서도 시나리오에 이를 관찰하듯 써냈다. 노라는 아버지를 싫어하지만, 노라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버지이며 노라가 가족 중 가장 닮은 사람도 아버지일 수도 있다.
구스타브는 연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딸이 나오는 연극도 인터미션에 나가버리곤 했다. 요아킴 트리에도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센티멘탈 밸류'는 형식적으로 '영화 만세'를 외친다. 영화가 아니면 구현할 수 없는 감흥들이 이어진다. 특히 바스트샷 혹은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배우들의 대화는 '센티멘탈 밸류'가 영화로서 가진 형식의 정수다. 대부분 영화감독들이 같은 구도로 두 배우의 대화 장면을 찍었겠지만, '센티멘탈 밸류'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때문인지 감독의 마술적 터치 때문인지, 대화 장면의 밀도가 엄청나다.
구스타브의 영화는 애초 계획과 조금 따르게 촬영된다. 배우, 시나리오, 세트가 모두 바뀌었다. 감독의 의도인지, 현실적 여건의 반영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 의도대로 찍은 것이 좋을지, 새로 찍은 것이 좋을 지도 알 수 없다. 구스타브는 예술적 야심을 현실과 타협한 것인가, 아니면 애초 구상이 잘못 됐다는 걸 인정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인가. 사람은 모두가 이기주의자이며, 자신의 삶을 최우선으로 아낀다. 나 살기도 어려운 때 남을 생각할 여유는 없다. 그래도 가족은 조금 다를지 모른다. 가족이 무심코 전한 안부가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구스타브 소유이자 노라 자매가 살던 집은 옛날부터 묘하게 뒤틀려 벽과 천장에 길게 금이 가 있다. 그래도 당장 무너지거나 할 위험은 없어 모두들 안심하고 살아간다. 가족은 그렇게 조금 뒤틀렸지만 그럭저럭 편안히 살만한 집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