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이트 타이거'
봉준호의 '기생충'을 두고 인도 영화인들의 '저격'이 몇 번 있었다. 어떤 감독은 '기생충'이 지루해서 보다 졸았다고 했고, 어떤 제작자는 '기생충'이 자신들의 영화를 표절했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실제 소송했는지는 모르겠다). 넷플릭스에서 인도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본 뒤, 인도 영화계의 반응이 조금은 이해됐다. '기생충'이 실제로 인도영화를 표절했다는 뜻이 아니라(난 표절 대상이라는 인도영화를 본 적이 없기에 알 수가 없다), '기생충'이 드러내는 계급 갈등이 인도영화 혹은 인도인들의 삶에 매우 흔한 소재라는 뜻이다.
성공한 스타트업 사업가가 인도를 방문하는 중국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담긴 사연 형식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이 사업가의 이름은 발람이며, 카스트의 하층계급 출신이다. 아버지가 일찍 죽어, 학교에서도 영특했던 발람은 예정됐던 대도시로의 유학을 떠나지 못한 채 찻집에서 일한다. 하지만 야망이 컸던 발람은 시골 찻집에서 일하며 푼돈을 벌고 할머니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해 여생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지주의 집에 운전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 발람은 할머니를 졸라 운전교습을 받은 뒤 면허를 따고, 기지를 발휘해 지주 둘째 아들 아쇽의 운전기사가 된다. 지주는 하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전형적인 악독 지주이고, 그의 큰아들 몽구스도 마찬가지. 다행인지 미국에 유학하며 아내 핑키를 만난 뒤 돌아온 아쇽은 미국식의 스스럼없는 태도가 몸에 밴 인물이다. 아쇽은 발람에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는가 하면, 이유 없는 구타나 하대도 못마땅해한다. 발람은 취직운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소 친절한 아쇽 부부 역시 어쩔 수 없는 상층계급의 일원이며, 아쇽 부부와 발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계급의 강이 있고, 결정적인 순간 아쇽은 발람을 낭떠러지 밑으로 밀쳐낼 수 있는 사람임이 곧 드러난다. 핑키의 생일을 맞아 아쇽 부부는 과음 뒤 운전대를 잡고, 발람을 뒷자리에 태운다. 그러다가 사고를 내 신원불명의 소녀를 친다. 발람은 자기가 처리하겠다며 부부를 뒷자리에 태운 뒤 그대로 도주한다. 차 범퍼에 남은 핏자국을 지우고, 소녀의 옷에서 찢어진 것처럼 보인 헝겊을 버린다. 다음날 지주와 첫째 아들 몽구스는 전례 없이 다정한 태도로 발람을 대한다. 변호사를 통해 자술서를 만들어둔 뒤 발람에게 사인을 하도록 시키기 위해서다. 발람이 운전을 하다 뺑소니를 냈으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발람이 진다는 내용이었다. 하지 않은 범죄를 자백할 처지에 놓인 발람이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영화에는 여러 차례 '닭장' 비유가 나온다. 바로 앞에서 닭들이 도살되고 있지만, 닭장 속의 어떤 닭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죽음을 예정된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하층계급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주인의 하대와 폭력, 심지어 범죄를 대신 뒤집어쓰라는 요구를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고향마을에 남은 발람 가족의 신분이 모두 알려져 있다는 사실 역시 순응의 한 요인이다. 지주는 말 한마디로 발람 가족을 모두 죽일 수 있는 인물이며, 공권력과 법은 이를 제지할 의사가 없음도 명백하다. 발람은 눈으로는 울지만 입으로는 웃으며 자술서에 사인한다. 아버지와 형 옆에 있던 아쇽은 이를 부당하다고 항변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명백하게 편이 갈린 상황에서, 49% 동조는 0% 동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친절하고 온화하고 민주적인 척한다 해도, 아쇽과 핑키 부부는 발람과는 다른 편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뺑소니는 신고조차 없었고, 발람의 자술서 역시 무용지물이 된다. 사고가 없어서가 아니라, 소녀의 죽음을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핑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미국으로 돌아가고, 아쇽과 발람은 예전처럼 살아간다. 다만 발람은 자신이 닭장 속의 닭이었음을 깨닫는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인들에게 수많은 돈을 뇌물로 지불하는 아쇽을 수행하면서, 발람은 조금씩 다른 마음을 먹는다. 무언가 파격적인, 급진적인, 심지어 가족이나 지인에 대한 인연을 저버릴 일을 하지 않고서는 닭장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인식한다.
'기생충'이 간계와 주인에 대한 뒤통수로 살길을 도모하려는 하층 계급 이야기라면, '화이트 타이거'는 처음에는 닭장 속의 닭처럼 순응하다가 점차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 하층 계급 이야기다. '기생충'이 미묘하고 복잡하다면, '화이트 타이거'는 단순하고 과감하다. 아마 인도가 한국보다 계급갈등의 측면에선 모순이 뚜렷하고 전선이 확실한 사회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생충'의 송강호는 이선균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긴 하지만, '화이트 타이거'의 발람처럼 지주의 발에 입맞추거나 발마사지를 하지는 않는다. 한국을 배경으로 '화이트 타이거' 같은 갈등 구도의 영화를 만든다면 조금 단순해 보일 수도 있다. 아마 주류 영화에선 힘들 것이고, 독립 영화로는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한국에 카스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카스트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