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SF #2'와 '어떤 물질의 사랑'
두 권의 한국 SF를 읽었다. '오늘의 SF #2'는 한국 유일의 SF무크지 2호다. 이 책의 출간은 한국 SF시장이 성장해 비정기적으로나마 이 같은 무크지를 만들만한 작품과 비평이 쌓여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정세랑은 인트로의 첫 문장을 "SF 작가들은 반 이상의 리뷰가 'SF는 싫어하지만...'으로 시작되는 것에 유감을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고 쓸 필요가 없다. SF를 읽지 않는 사람들이 SF를 싫어하든 싫어하지 않든 SF작가와 팬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SF는 싫어하지만"이라고 시작하는 진술을 합리적, 논리적으로 한다면, 그는 이미 수많은 SF를 읽어온 독자일 것이다. 그의 진술이 합리적, 논리적이 아니라면, SF에 관심은 없으면서도 한 마디 걸쳐보려는 사람들이니 그런 반응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장르의 팬들이 장르 바깥의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동지를 늘리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런 태도야말로 일종의 콤플렉스처럼 느낀다. 마치 예전에 인순이가 '예술의 전당'을 대관하기 위해 그토록 수차례 노력한 것과 비슷한 일이다. 예술의 전당 대관 관계자들의 엘리트주의를 탓할게 아니다.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 음악을 공연하는데 적합하게 설계된 곳이고, 대중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공연장은 그 외에도 숱하게 널렸는데도, 인순이는 왜 그리 '예술'이 되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한국 SF 작가, 비평가, 작가 역시 장르에 자족해도 충분하다.
이지용의 '듀나론'은 듀나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시선은 좀 흐릿하지만, 듀나의 수많은 작품들을 정리하는 데는 성공한 글이다. 다만 다음에 누군가가 듀나론을 쓴다면, 이보단 한발 더 나가야 한다. 단편 중엔 문이소의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과 김혜진의 '프레퍼'가 인상적이었다. 전자는 '환상특급'의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보는 느낌이고, 후자는 장편을 위한 설정 연습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작가가 이를 토대로 장편을 쓴다면, 쉽게 영상화 판권이 팔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물질의 사랑'은 요즘 가장 각광받는 SF작가의 소설집이다. 역시 표제작인 '어떤 물질의 사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젠더 이슈, 성소수자 이슈, 가족구성권 등 근래 핫한 테마들을 부드럽게 소화하면서도, '영원한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감정선도 건드린다. '그림자 놀이' 역시 영원한 사랑을 다룬다. 다만 '인터스텔라'처럼 엇갈린 시간대에 속한 두 연인의 마지막 순간 이야기다. '두하나'는 설정이나 묘사의 측면에서 가장 '장르적'이다. 여성들의 연대, 임파워링 같은 주제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필요하겠지만, 내게는 흥미가 덜하고 또 최근 너무 자주 쓰이는 작풍이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