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두 단편집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에 관심을 가진 건 그의 특이한(비극적인) 삶 때문이기도 하고, 페미니즘 SF를 몇 편 읽어보려는 시도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팁트리 주니어는 군에 입대해 공군 조종사의 삶을 살았고, 전역 후 CIA 정보원으로 일했으며, 이후엔 대학에서 실험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SF를 썼고, '여성SF작가'라는 점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아 남성의 필명을 택했다. 훗날 팁트리 주니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SF계 안팎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성별이 밝혀진 뒤에는 이전처럼 빼어난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으로 오랜 생활 투병했는데, 팁트리 주니어는 남편의 말년이 가까워진 어느날 남편을 산탄총으로 쏘아 죽이고, 곧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이상이 책 날개에 실린 팁트리 주니어의 삶.
작품 내적으로 보면, 최근 잇달아 읽은 옥타비아 버틀러, 김보영의 작품보다 팁트리 주니어가 내 취향에 가까웠다. 난 SF는 사변소설의 가능성을 갖지만, 이전에 장르소설로서의 쾌감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입장인데,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팁트리 주니어는 점잖을 떨지 않는다. 사색을 유도하지 않고, 내러티브와 정경의 쾌감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때로 잔혹한 묘사들은 작품의 최종 목적에 무리없이 복무하며, 그러한 극단적 설정만으로도 대안적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단편 '체체파리의 비법'은 여성이 멸종하고 남성들만 살아남기 시작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근친 살해 같은 자극적 설정으로 독자의 손을 떨리게 한다. 작품성만으로는 소설집 '체체파리의 비법'에 실린 작품들이 더 뛰어날수도 있겠지만, 내가 위에 언급한 SF의 효과 측면에서는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이 더 인상적이다. '돼지제국'은 강간 복수극으로 시작했다가 '미지와의 조우'풍의 외계생명체 접촉 이야기로 넘어간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중편 분량으로 붙여놓은 것 같은데,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즐겁다. '별의 눈물'은 출애굽기 혹은 아미스타드 풍의 노예탈출기다. 이런 이야기의 결말부 반전은 사실 예상가능하지만, 그래도 효과적이다.
버틀러, 김보영의 소설을 재독 할 것 같지는 않다. 팁트리 주니어는 흥미를 위해, 아이디어를 위해 언젠가 재독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