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에 대한 짧은 역사

넷플릭스 다큐 '디스 이즈 팝'

by myungworry

'디스 이즈 팝'이라는 간략한 제목의 다큐 시리즈다.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제목을 보고 가장 관심 있는 '브릿팝에 경배를!' 편을 봤다. 재미있어서 상당히 집중했다. 하루 동안 '스톡홀름 증후군' '페스티벌의 비상'편을 더 봤다.


많은 넷플릭스 다큐가 그러하듯, 해당 주제의 핵심 당사자와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해석해 엮는다. 브릿팝 편에 데이먼 알반, 갤러거 형제가 나오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넷플릭스 다큐라도 그렇게까지 섭외할 수는 없었나 보다. 다만 저들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아마 노앨 갤러거가 인터뷰에 응했으면, 오아시스 편을 따로 제작해야 하지 않았을까.


블러는 별 볼 일 없는 밴드였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너바나가 데뷔했다. 아무도 중산층 청년이 연주하는 영국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 블러는 세금 낼 돈을 벌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니는 3개월의 미국 투어를 다니는 신세였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파크 라이프'가 떠버렸다. 하루아침에 블러와 비슷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넘쳐났다. 지난주까지 헤비 메탈을 하다가, 이번 주부터 프레드 페리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 홍차 마시는 노래를 하는 밴드들이 나타났다. 모든 밴드들이 영국적인 삶의 양식을 다뤘다. "영국 밴드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자랑스운 일이 됐다. 영국의 극성스러운 음악 미디어들은 '브릿팝'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뒤, 매주 새로운 밴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블러


오아시스는 좀 다른 밴드였다. 이전의 브릿팝 밴드들이 대부분 런던 중산층을 타겟으로 한 음악을 했다면, 오아시스는 맨체스터의 노동자 계층 정서를 노래했다. 그들의 노래는 곧바로 삶에서 나왔다. 한 코멘테이터는 오아시스에 브릿팝이란 명칭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아시스는 그냥 로큰롤 밴드였다. 미디어들은 다시 블러 대 오아시스, 런던 대 맨체스터, 중산층 대 노동자의 구도로 호들갑을 떨었다. 블러의 '컨트리 하우스'와 오아시스의 '롤 위드 잇'이 의도적으로 같은 날 발매됐다. 모든 영국인이 둘 중 한 음반은 사야하는 분위기였다. 첫 주 판매량은 블러가 근소하게 많았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겼다. '원더월' 덕이었다.


브릿팝의 전성기는 3년 정도였다. 토니 블레어는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의 파티에는 갤러거가 종종 초대받았다. "오아시스도 주류가 됐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생겼다.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재집권하면서 브릿팝의 시대는 갑자기 막을 내렸다. 오아시스의 노래는 여전히 좋았지만, '데피니틀리 메이비'처럼 좋지는 않았다. 1997년 나온 블러의 '송2'는 브릿팝의 짧았던 전성기를 마무리하는 송가였다. "그런지를 죽이겠다"며 나타난블러가 멋진 그런지 음악을 냈다.


오아시스


'스톡홀름 증후군'은 세계 팝음악의 강국 스웨덴의 저력을 다룬다. 재밌는 건, 이 사람들이 말을 잘 안한다. '성공'에 대해 떠들기 싫어한다. "왜 당신의 음악이 성공했나요?"라고 물으면 다들 답을 꺼린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형식적으로 재미있다. 진행자가 이런저런 성공 요인을 추정하고 농담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스웨덴 팝의 '시조새'는 물론 아바다. 아바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영어로 가사를 쓴 '워털루'를 불러 우승했다. 전 유럽과 미국까지 아바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열광했지만, 정작 스웨덴에서는 시큰둥했다는 증언도 재미있다. 사회,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노래가 아니라 남녀의 소소한 사랑 노래를 좋아하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아바는 '소박한 사회주의 국가' 스웨덴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았다. 어느날 엘비스 코스텔로가 스웨덴에 공연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라며 아바의 곡을 커버하자, 그때서야 '아바를 좋아해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한다.


이후 록시트, 에이스 오브 베이스 같은 스웨덴산 인기 밴드들이 나타났지만, 정작 주목할만한 실력자는 데니스 팝이라는 프로듀서였다. DJ 출신인 그는 정식 피아노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손가락 세 개 만으로 화음을 만들고는 좋은지 나쁜지 가렸다. 데니스 팝의 송메이킹 능력이 대서양 너머까지 알려졌다. 백스트리트보이스가 데뷔곡 'I want it that way'를,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데뷔곡 'Baby one more time'을 데니스 팝에게 받았고, 대서양을 건너 그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연습하고 녹음했다. 데니스 팝은 35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스웨덴의 팝이 죽었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의 스웨덴 출신 대중음악인으로는 루드비히 고란손이 있다. 차일디시 감비노와 'This is America'를 같이 만들었고, 라이언 쿠글러의 친구로 '블랙 팬서' 영화음악도 만들었다. 이 사람이 에피소드 초반에 나오는데, 성공에 대해 말해달라 하니 답을 안하는 사람이다. 그래미 수상 정도는 성공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페스티벌의 비상' 편은 다소 평이했다. 당연히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 우드스탁에서 시작해 글래스톤배리를 중요하게 다룬 뒤, 우드스탁99의 실패를 짚고, 현대 미국의 대안적인 페스티벌을 다룬다. 글래스톤배리의 아이디어를 낸 농장주가 인터뷰이 중 가장 거물이라고 할까. 이 농장주 가문은 200년전쯤부터 이 땅에 살아왔다 한다. 왜 그런지 농장주는 1970년 그 넓은 땅에서 공연을 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했고, 마크 볼란을 가까스로 섭외해 첫 글래스톤배리 공연을 치렀다고 한다. 이후 50년간 글래스톤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탄탄한 페스티벌이 됐다. 1980년대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대처 정부는 영국 이곳 저곳을 떠도는 히피 청년들이 못마땅했다. 경찰은 오랫동안 감춰왔던 폭력성을 발휘해 별다른 이유 없이 청년들을 때려잡았다. 청년들이 농장으로 왔을 때, 농장주는 조건 없이 이들을 돌봤다. 농장주는 사상적으로 딱히 진보적인 포지션을 가진 것 같지는 않지만, 감리교적인 박애정신에 기반해 청년들을 보호했다고 돌이킨다.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예제와 스토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