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나 싱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인도에 가본 적은 없지만, 외신을 타고 넘어온 인도 소식이라고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최근의 사례로는 심각한 코로나19 상황, 이전에 종종 들려온 것으로는 집단 성폭행과 살해, 그리고 관대한 처벌 등이었다. 인도에 그런 끔찍한 일만 일어날리는 없지만, 긍정적인 소식은 대체로 국경을 넘지 않는다. 아무튼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인도의 젠더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인 듯하다.
반다나 싱의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는 처음 읽어본 인도 출신 작가의 SF다. 싱은 뉴델리에서 나고 자랐고, 미국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혼 이후 학계에서의 경력단절을 겪다가 이후 SF를 썼고 지금은 물리학 및 지구과학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한다.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는 단편집이다. 그리고 각 단편들의 톤과 주제는 일관되다. '강력한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인도 사회 여성과 그들의 꿈'이다. '꿈' 부분에서 SF가 개입한다. 때론 과학적 논리는 없어서, 판타지라 해도 좋겠다. 표제작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는 결혼한 지 40년 된 중노년 남성이 화자다. 그는 어느 날 아침부터 스스로 '행성'이라고 주장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후 아내는 가끔 이상해 보이지만 자신과 주변에 무해한 행동을 한다. 남편은 동네 보기 부끄러워 아내를 말린다. 아내의 이상행동은 조금씩 정도가 심해지고, 결국 부부는 카프카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갈증'에는 뱀이 되는 여성, 혹은 여성으로 변신한 뱀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답답한 남편, 명예남성인 시어머니와 살고 있다. '사면체'에는 거들먹거리는 남자와 약혼을 앞둔 여대생이 등장한다. 여대생의 삶은 델리 한복판에 정체 모를 사면체가 나타나면서 바뀐다. 삶의 궤적에 순응하려던 여대생은 사면체와 함께 자신이 그 궤적에서 불편해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사면체 때문은 아니고, 그 불편은 진작에 그가 느끼고 있던 것이었을 테지만. '다락방'은 다락방에 세든 미대생 언니를 보는 소녀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소녀의 아빠는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 엄마가 무언가 말을 하려 하면 뉴스 봐야 하니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미대생 언니 역시 가부장제의 틀에 포획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SF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대안적 상상에 유효한 장르임을 다시 느낀다. SF가 단지 그런 목적으로만 쓰여서는 안된다고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