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고나다의 '콜럼버스'
왓챠에 있는 '콜럼버스'(2017)는 한국계 미국 감독 코고나다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애프터 양'은 지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서 선보였고, 역시 왓챠에서 수입했다. '애프터 양'에 대한 평가도 대체로 괜찮은 듯하다. 좋은 커리어를 쌓고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예명은 오즈 야스지로의 각본가 코고 노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콜럼버스'는 미국 독립영화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톱스타는 아니지만 괜찮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배경과 주제가 소략하지만 전개가 깔끔하다. 미국 인디애나의 소도시 콜럼버스가 배경이다. 이곳은 주요한 미국 현대 건축물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건축에 관심이 크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건물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미국 모더니즘의 핵심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들이라고 표현한다. 명소 주변에 사는 많은 주민들이 그러하듯이, 콜럼버스 주민들도 이 아름다운 건물들에 별 관심이 없다. 다만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젊은 백인 여성 케이시만이 이 건물들의 가치를 알고 홀로 투어 가이드 연습을 하곤 한다. 이 도시에서 강연하기로 했던 저명한 한국계 건축과 교수가 갑작스럽게 쓰러지면서 그의 아들 진이 급하게 서울에서 온다. 진은 아버지의 상태를 보기 위해 왔지만, 평소 아버지와 사실상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케이시는 우연히 진을 만나 도시의 건축물들을 소개해준다.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인물들 간의 감정이 드러날 듯 말 듯 하다는 점에서 감독이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오즈 야스지로의 분위기가 풍긴다. 비슷한 분위기의 멜로물로는 한국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꼽을 수도 있겠다. '멜로'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케이시와 진이 나누는 감정이 아무래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이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여느 멜로영화에서처럼 본격적인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둘에게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 하나씩 엮여있기도 하다. 케이시와 진이 서로에게 쉽게 공감하는 데에는 둘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둘은 각각 어머니, 아버지에게 묶여 있다. 케이시는 한때 마약중독에 빠졌다가 회복했으나 최근 다시 마약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케이시는 더 큰 도시로 나가서 건축 공부를 하고 싶지만, 쉽사리 어머니를 떠나지 못한다. 진은 서울에 산적한 일을 두고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왔다. 아들로서의 도리 때문에 오긴 했지만, 코마에 빠져 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위해 할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진은 병원을 거의 찾지도 않는다. 단지 아버지가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니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것뿐이다.
결국 결단하는 것은 케이시다. 진은 끝내 발목이 잡힌다. 그렇게 둘도 이별한다. 아마 상대적으로 젊은 케이시가 그대로 주저앉게 만들기는 각본상으로, 각본을 쓴 감독의 마음상으로도 어려웠겠지. 케이시가 나고 자라고 사랑하는 도시, 홀로 내버려두면 불안한 엄마를 결국 떠나기로 마음먹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라기보다는 케이시의 성장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진(이 역을 맡은 존 조가 영화 촬영 당시 이미 40대 중반)은 서울로 돌아가지도 콜럼버스에 영원히 머물지도 못한 채 연옥 같은 상황에 놓인다. 아마 인생의 중반부에 접어든 많은 사내들이 대부분 진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제목에는 진의 처지를 '발목 잡혔다'고 표현했지만,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와의 인연에 묶인 채 살아간다. 수도승이나 고갱 같은 예술가가 아니라면. 수도승, 고갱이 인연에 묶여 살아가는 사람보다 행복한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