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썸 카인드 오브 몬스터'
2004년 공개된 메탈리카에 대한 다큐 '썸 카인드 오브 몬스터'를 넷플릭스에서 뒤늦게 봤다. 왜 이 영화를 이제야 알았지? 사실 얼마 전 씨네21에 실린 오지은의 글로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았다. 오지은은 이 영화를 소개하며 '리빙 레전드'급에 오른 밴드의 딜레마를 이렇게 요약한다.
리스너들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구닥다리 느낌은 주지 않으면서, 유행에 편승하는 느낌이 없으면서, 신선함은 있으면서, 자기 복제가 아닌 좋은 노래로 가득 찬 명반'이 나오길 바란다.
몰랐지만, 아니 모르는 척했지만, 10년 넘게 정상급이었던 밴드가 저런 음악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힘들다. 오아시스는 형제의 내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초기의 성취를 되풀이하기 어려웠을 거다. U2는 꾸준히 신선하면서 좋은 음악을 만들었지만, 후반부의 어떤 음반은 팬들에게 미움받았다. 비틀스, 레드 제플린은 전기, 후기를 이어가며 위의 조건에 어울리는 명반들을 발표했다가 적절한 순간에 해체했다.
'썸 카인드 오브 몬스터'는 메탈리카의 새 음반 작업 과정을 추적한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경로에 들어간다. 14년간 밴드에 있던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태드가 갑자기 탈퇴한다. 임시방편으로 프로듀서 밥 록이 베이스를 연주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베이시스트의 유무가 아니었다. 이미 밴드에는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뉴스태드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도 함께 추구하기 원했으나, 프런트맨 제임스 햇필드는 '투 잡'을 허용하지 않았다. 팀 내 지분이 햇필드와 거의 같은 드러머 라스 울리히는 햇필드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서로 연주 스타일도 마음에 안들고, 행동거지도 마음에 안든다. 내성적으로 연주만 열심인 커크 해밋은 서핑을 즐기고 농장에 머물며 유유자적하지만, 드러머와 보컬의 자존심 싸움이 꼴보기 싫어진 지는 오래됐다. 매니지먼트는 한 달에 4만 달러를 받는 심리치료사를 고용한다. 심리치료사는 밴드 멤버들의 대화를 듣고 가끔씩 개입해 조언한다. 처음엔 그의 말이 도움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멤버들은 심리치료사가 월권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마치 자기가 밴드 멤버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멤버들은 미리 곡을 써오지 않은 채 함께 연주를 하며 곡을 만드는 방식을 시도하지만, 얼굴 보기도 싫은 사람과 창의적인 일을 하기 쉬울 리가 없다. 게다가 햇필드가 알코올 문제로 갑작스럽게 재활원으로 가면서 음반 작업은 기약 없이 중단된다.
메탈리카는 1980년대 초반 데뷔해 20여 년간 활동하며 '메탈갓'의 반열에 오른 밴드다. 1억장 넘는 음반을 팔았고, 한 번에 수십만 명 앞에서 공연했으며, 엄청난 부를 쌓았다. 울리히의 집에는 바스키아 등 대가의 그림이 즐비하다. 멤버 모두 억만장자인 데다가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음악 취향도 조금씩 변했으니 가진 것 없고 성공하겠다는 열망만 있던 20대 초반만큼의 케미스트리가 있기 어렵다. 심리치료사가 딱히 그런 표현을 쓴 것 같지는 않지만, 밴드는 일종의 '중년의 위기'에 빠져있는 것 같다. 단지 메탈리카의 중년이 여느 인생의 중년과 다른 점은, 일반적인 중년은 경제적 여유가 있을지언정 자존심을 적당히 접을 줄 알고 안되는 일은 안된다고 포기할 줄 아는 반면, 울리히와 햇필드는 자존심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햇필드가 재활원을 나와 1년여 만에 밴드에 합류하고 이들은 다시 음악작업을 시작하지만 앙금은 충분히 가라앉지 않았다. 재활 스케줄 때문에 햇필드는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작업에 참여하기로 한다. 햇필드는 오후 4시 이후 음악적 결정이 이뤄지는 걸 참아내지 못한다. 다른 멤버들로서는 어이없는 일이다. 내가 오후 4시 15분에 작업 결과를 듣고 이야기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보스가 둘인 조직에 흔히 일어나는 혼돈이 메탈리카에도 재현된다.
어찌어찌해서 이들은 음반 작업을 마친다. 그 결과가 '세인트 앵거'다. 오디션 끝에 새 베이시스트 로버트 트르히요를 뽑고, 팬들을 초청해 행사를 열었으며, 기자들을 대상으로 청음회도 연다. 영화에는 멤버들이 어떻게 불화를 극복하고 다시 음악 작업에 몰두하게 됐는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극영화였다면 그 사이의 감정 변화나 사건을 정확하게 짚었겠지만, 다큐멘터리가 멤버들의 마음이나 일상을 24시간 담아낼 수는 없는 노릇.
다시 협력하게 된 명확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감정이 변화하는 정확한 시점이나 사건을 찾기는 어려우니까. 아마 음반을 내야 한다는 목적이 이런저런 갈등을 잠재웠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모난 부분을 감추는 방법을 터득했을 수도 있고, 일할 때만 얼굴 보면 되니까 참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더이상 싸우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썼을 수도 있고, 또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메탈리카는 2021년까지 건재하다. 이렇다할 불화설도 들리지 않는다. 서로 안맞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혼해봐야 별 수 없는 부부가 각방 쓰면서 가끔 사이 좋다가 대체로 데면데면하게 사는 그런 느낌일까. 아마 제목이 언급하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연상하는게 제작자의 의도에는 부합하겠다. 각기 다른 시체를 엮어서 만들어 딱히 보기 좋지는 않지만 어쨌든 살아있고 심지어 무시무시한 괴물. 햇필드와 울리히와 해밋과 트루히요는 각기 다른 시체에서 가져온 부위인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개봉 10년 뒤의 후일담도 있다. 메탈리카는 최대의 위기를 넘겼고, 그때를 돌아보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햇필드는 '썸 카인드 오브 몬스터'가 영화계에선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음악계에서는 비판도 받았다고 밝힌다. '메탈갓'으로서의 신성과 신비함이 영화의 지나치게 솔직한 묘사 때문에 훼손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햇필드가 딸의 발레 연습실에 가서 즐거워하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비둘기 죽이던 오지 오스본이 스판덱스 입고 에어로빅하는 모습 공개한 게 언제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