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사무라이'
제목은 '사무라이'(뮤진트리)지만 칼싸움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17세기 초반, 전쟁이 끝나고 막부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시점의 일이다. 주인공 로쿠에몬은 대대로 물려받은 비옥한 영지를 영주에게 빼앗긴 뒤 계곡의 척박한 영지를 새로 불하받은 남자다. 로쿠에몬은 농민들과 똑같이 땀흘려 일하고 평생 이 계곡을 떠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표류한 스페인 선원과 통역사로 일하는 선교사를 통해 스페인 식민지였던 멕시코와 무역로를 열고 싶었던 영주가 로쿠에몬 등 하급 사무라이를 사절단으로 보내기로 한다. 명색이 사절단이지만 하급 무사로만 구성된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이들을 안내하는 통역사 겸 선교사 벨라스코는 스페인 정복자와 같은 야심을 품고 있다. 기독교 불모의 땅인 일본을 하느님 모시는 곳으로 바꾸고 싶은 종교적 야망이다. 일본의 기독교 탄압이 극심해 교황청에서는 거의 포기한 상태지만, 벨라스코는 어떻게든 일본을 개종시키려 한다.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에 닿은 뒤 스페인, 결국 바티칸까지 향하는 이들 사무라이와 벨라스코의 여정을 그리는 장편이다.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이 일본에 선교하러 온 선교사들을 집중해 그렸다면, '사무라이'는 무역을 위해 가톨릭 본산으로 향하는 사무라이들과 이들을 안내하는 선교사 이야기다. '침묵'은 일본 내에 전파된 가톨릭 이야기고, '사무라이'는 일본 밖으로 향하는 사무라이 이야기다. 벨라스코는 일본인들이 영리하고 성실하지만 지극히 현세적이라 내세를 다루는 기독교를 믿기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벨라스코는 불굴의 정복자처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무라이들은 무역로를 열라는 명령을 어떻게든 받들려 한다. 멕시코, 스페인, 로마의 숙소마다 걸려있는, 헐벗고 추한 남자를 섬기는 남만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세례를 받으면 남만인들의 환심을 사 무역로를 틀 수 있다는 생각에 '형식적인 기리시탄'이 되길 택한다. 이들의 선택은 나중에 예상치 못한 결과로 돌아온다.
로쿠에몬이든 벨라스코든 운명에 순응한다. 로쿠에몬은 영주의 명을 받들고, 벨라스코는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려 최대한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목숨을 바치는 상황도 그대로 감당한다. 자신은 영주의 정치적 계략, 신의 계획의 일부일 뿐이라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죽음에 아무런 회한도 한탄도 없이, 마치 풀이 생겼다가 계절이 바뀌어 시들어 죽는 것처럼, 간결하게 묘사된다.
실제 일본을 떠나 이탈리아까지 견문한 사무라이 사절단과 선교사의 실화에 바탕한 모양이다. 다만 로쿠에몬의 일기가 당국에 의해 압수된 뒤 소각돼 전말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엔도 슈사쿠는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동양과 서양, 종교와 비종교, 제도 종교와 비제도 종교의 충돌 양상을 재현했다. '침묵'보다 스케일이 크고 서사가 굴곡져 읽는 재미가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