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이고 씁쓸하고 친근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어느 '고쿠라 일기' 전>

by myungworry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를 좋아한다.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당히 씁쓸하고 적당히 친근한 그의 사회파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에 나타난 일본 1960~70년대 풍경 묘사를 좋아한다. 매일 귀가하면서 아내를 불러 뒷골목 소바 한 그릇 먹고 들어가는 묘사 같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짐승의 길'이다. 요즘으로 치면 24부작 막장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장편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통속 소설(내 마음대로 분류)이다.


'어느 고쿠라 일기 전'도 사회파 추리 단편 모음집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일부 추리소설의 요소가 있는 작품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이른바 '순문학'에 가깝다. 실제로 단편 '어느 고쿠라 일기 전' 역시 대중적 소설에 주는 나오키 상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이 상의 심사위원 중 하나가 "이 작품은 아쿠타가와 상에 더 적합하다"고 해 아쿠타가와 상 본선에 올랐고 그대로 수상했다고 한다.


수록작들은 대부분 전기 소설에 가깝다. 실존 인물을 취재해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가상의 삶을 만들어냈다. 인물들의 처지는 대체로 비슷하다. 시골 마을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주인공은 고고학이든 문학이든 무언가에 특별한 열정을 갖고 있다. 그 열정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뛰어넘어 프로를 긴장시킬 정도다. 도쿄의 프로 학자가 그를 가상히 여겨 근처로 부르거나 업적을 인정해준다. 주인공은 점점 자신의 학설에 심취하고 자신이 누구 못지않은 학자라고 자신한다. 그의 태도는 도쿄의 프로들을 언짢게 한다. 차츰 주인공은 프로, 주류 세계에서 배척받는다. 결국 주인공은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다만 그의 업적은 이후에 재평가 받는다. '국화 베개'에는 하이쿠를 써서 인정받았다가 결국 스승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미쳐 죽은 여성 시인이, '어느 고쿠라 일기 전'에는 소설가 모리 오가이의 삶을 추적하다가 사망하는 청년이, '깨진 비석'에는 주목할만한 논문집을 남겼지만 생전에는 주류 학계에서 비웃음을 산 고고학자가 나온다. 작가는 생전 자신의 신념을 믿고 분투했지만 그 때문에 스승, 친구, 가족에게 외면당하다가 쓸쓸하게 죽은 사람의 삶에 애정을 느끼는 것 같다. '애정'이라고 썼지만, 작가가 이런 삶을 마냥 긍정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과도하게 열정적이고 독선적인 기질이 그 쓸쓸한 말로의 원인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인물에 대한 그 적당한 거리감이 나는 좋다.


'빨간 제비'에는 위안부 소재가 나온다. 조선에 주둔중이던 일본군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인 위안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종전과 함께 미군이 조선땅을 접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일본군은 현지의 일본인 여성들로 미군을 맞이할 위안부를 꾸리려 한다. 여기에서 '빨간 제비'가 사용된다. 정작 조선에 당도한 미군은 일본인들의 계획에 별 관심이 없다. 일본군의 행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고발하거나, 도구화된 여성들의 처지를 눈물로 연민하는 게 아니라, 일본 남자들의 지리멸렬함을 냉소한다. 역시 실력만큼 인정받지 못한 고고학자를 다룬 '피리 단지'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나온다. 주인공이 논문으로 상을 받고 천황이 주최한 연회에 초청받은 대목이다.


천황을 중심으로 테이블 양쪽에 고령의 학사원 회원들이 앉아 장중한 동작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말석에 앉아서, 죽을 때가 다 된 노인들이 얌전하게 늘어앉아 있는 광경을 바라봤다. 절망도 나름대로 내용이 있었다.


언급했다시피 소재와 전개가 겹치는 작품들이 있다. 41세에 데뷔한 작가는 이후 40년간 편수로는 1000편, 단행본으로는 700여권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 글이 겹치는 일에 대해선 눈 감자. 나도 내가 쓴 글 기억 못 할 때가 아주 많다. 검색해서 한참을 읽다가 내가 쓴 글이어서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침묵'의 글로벌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