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는 맨부커상을 수상한데다 괜찮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인기 작가지만, '소설 외길'만을 걸어오진 않았다. 사전 편집자, 저널리스트, 문학 편집자, 텔레비전 비평가, 음식 평론가로 일한 적이 있고 익명으로 범죄 소설을 내기도 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이 미술에 대한 에세이를 쓰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렇다고 19~20세기 서유럽 미술가에 대한 친절한 안내 혹은 비평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다산책방)을 추천하긴 어렵다. 제리코, 들라쿠르아, 쿠르베, 세잔, 드가, 브라크, 마그리트, 프로이트를 다루면서 피카소, 마티즈, 베이컨, 모네, 호크니는 다루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런저런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묶었기 때문인지, 스타일에도 일관성이 없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을 다루면서는 그림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의 전개를 한참 기술한다. 생소한 하워드 호지킨 편에서는 이 화가와의 친분과 일화 등을 소개한다. 미술가에 대한 일방적 찬사는 거의 없다. 혹독한 비판도 없지만, 읽다 보면 은근히 조롱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시간에 따라, 내키는대로 썼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한국번역본 제목에 '사적인' 이란 수식을 넣었을까.
이 책을 읽을만하지 않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반스는 론 뮤익의 거대하고 극사실적인 조각상을 다루면서 이것이 19세기 외과의사의 시체 조소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는 뮤익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세 교회 제단화, 아프리카 민속 공예품이 애초의 용도와 상관 없이 훗날 '예술'로 인정받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그림은 화가의 의도에서 벗어나 해방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독자'의 자율권은 더 커진다." 반스의 글이 본격적인 미술비평이 아니면 어떤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자는 미술비평에 종사하지 않는데.
루시안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좋아해서 그에 대한 챕터를 흥미롭게 읽었다. 프로이트가 인간적으로 개차반임은 알고 있었지만, 반스는 그에 대한 또다른 개차반의 일화를 몇 개 더 들려준다. 반스는 "어쩌면 때가 되면 이 모든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예술 작품은 언젠가는 작가의 전기를 벗어나 자유로이 떠돈다는 특징이 있으니까. 어느 한 세대에서 거칠고 비열하고 비예술적이고 차가웠던 것이, 다음 세대에 가서는 진실된 것, 심지어 삶의 아름다운 화신이 되고 삶을 표현하는 모범이 되기도 한다"고 적는다. 프로이트의 실제 삶과 상관 없이 그의 회화는 오래도록 사랑받을 것이라는 뉘앙스다. 그럼에도 프로이트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았던 반스로서 그의 인간적 오점에 대해 완전히 눈감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나는 프로이트가 싱크대나 화분, 나뭇잎, 나무 그림을, 불모지나 거리의 그림을 더 많이 그렸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
작가답게 날카롭게 박히는 비유들이 많다.
"결국 야수파는 다양한 목적지로 출발하는 비행기들이 집결하는 허브 공항과도 같았다"
"브라크의 도덕적 권위는 공공연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의 침착성과 침묵, 예술을 통한 사회참여는 무언가, 부지중에, 조적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을 폭로해내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권위는 결국 그림 자체에서 나온다."
"세잔에게 미술은 실물에 의존하는 모방이라기보다는 실물과 대등하게, 또 나란히 존재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그 자체의 규칙을 지니고, 그 자체의 조화를 추구했으며, 설명이라는 구식 기능을 추방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