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소설들
예로부터 '소설가 옆에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소설가가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를 소설에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소설가의 걸작 한 구석에 자신을 닮은 사람이 나온다면 영광일 수 있겠으나, 소설가란 사람들이 때론 의심 많고 뒤틀린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라, 당신이 존경할만한 멋진 사람으로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아예 소설가와 친분을 쌓지 않는 것이 상책?
'레벤느망' 개봉에 즈음해 그 원작이 된 '사건',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단순한 열정'까지 읽었다. '사건'만 읽을 생각이었는데 '단순한 열정'도 두께가 두껍지 않아 덩달아 빌렸다. 에르노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데뷔 초기엔 전통적인 '픽션'에 근접한 소설을 쓰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매우 자전적인 글을 선보였다. (물론 본인이 자전적이라고 주장하니 그렇다고 여기는 거다. 누군가 에르노의 사생활과 글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검증할 리는 없으니.)
'사건'은 임신중절 경험이다. '단순한 열정'은 '불륜' 경험이다. 임신중절이야 글이 쓰이기 40년 가까운 과거의 일이라 하더라도, '단순한 열정'은 불과 출간 3년 전의 경험이다. 상대 남자는 'A'라고만 표기되긴 했지만, 그와의 만남이나 연애 과정이 꽤 구체적이라 작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근접한 사람은 A가 누군지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A의 부인까지도.
'단순한 열정'에 해설을 쓴 이재룡에 따르면 "자서전과 허구의 합성어인 '오토픽션'이 학술용어로 거의 굳어진 형편"이라고 한다. 아마 에르노의 글들도 대체로 이 분류에 포함될 것이다. 자신의 삶 속 생각, 경험, 느낌을 해부하듯 살피는 에르노의 글은 밀도 있고 잘 읽힌다. '모든 것이 경험'이라고 하니,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없다. 다만 나는 최근 한국 문학에서 오토픽션이 불러일으킨 논란이 생각났다. 소설 속에 자신의 말, 행동이 인용됐다는 이유로 소설가를 비난한 사례가 있었다. 어떤 소설가는 논란 이후 사실상 활동을 접었다. 첫 문단에서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나라도 누군가의 소설에 나의 사생활이 동의 없이 나온다면 불쾌할 것 같다. 다만 나 같으면 공개적으로 작가를 비난하는 대신, 내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몰래 읽으며 낯 뜨거워할 것 같기는 하다. 에르노가 한국 소설가라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