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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추남에서 힘센 장사로

애니 프루 '시핑 뉴스'

by myungworry

'시핑 뉴스'란 '해운 소식'이란 뜻이다. 거대하고 보기 나쁜 몸집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 코일이 캐나다 남동부 뉴펀들랜드의 3류 신문사에서 맡은 일이기도 하다. 가족으로부터 미움받고, 직장을 다니다가 잘리다가 다시 다니기를 반복하고, 악의는 없지만 별다른 능력도 없는 남자. 하나뿐인 친구는 결혼하더니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평생의 사랑이라고 생각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보니 이 여자는 완전히.... 아이 둘을 낳았으나 아내는 아이에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노골적으로 외도하고 다른 남자하고 놀러 다니다가 참혹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부모는 한 달 간격으로 암에 뇌종양 선고를 받더니 동반자살. 코일은 생활력 강한 고모의 설득으로 어린 두 딸과 함께 조상들의 거주지였던 뉴펀들랜드로 떠난다. 그곳에는 고모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이 수십 년간 빈 채로 방치돼 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고모의 고집에 코일은 집을 조금씩 수리하고 지역 신문사에 취직하며 낯설고 황량한 땅에 적응해간다.


초반 50페이지 동안 코일에게 닥친 불행들은 장편으로 늘려도 될만한 사연이다. 뉴펀들랜드에서도 코일의 삶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다. 큰딸은 산만한 데다 헛것을 본다. 둔감한 코일마저 걱정할 정도다. 고모는 낡은 나무집에 터무니없는 집착을 보인다. 신문사에서 코일은 해운 소식과 교통사고 소식을 맡는데, 쌍X이었지만 사랑했던 아내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터라 교통사고 기사를 쓰기가 괴롭다. 게다가 지역에 교통사고뿐 아니라 이상한 사건사고는 왜 그렇게 많은지. 인면수심이라는 클리셰가 딱 어울리는 일들이 신문사 동료들에 의해 종종 서술된다. 코일은 통근을 위해 배를 타야 하는데, 수영을 배우지 못해 배 타기가 두렵다. 무엇보다 이 지역 날씨는 최악이다. 춥고 바람이 많이 분다.

800px-2018-us-nationalbookfestival-annie-proulx.jpg 애니 프루(1935~)


애니 프루는 이 우울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시적인 문체가 자아내는 기묘한 서정이 전편에 감돈다. 분명 끔찍한 내용인데 이상하게 아름답다. 코일과 그가 주저하다가 새로 찾은 사랑 웨이비의 삶은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 물론 한 발 후퇴할 때도 있지만, 끝내 두 발 전진하고야 만다. 하루하루를 헤아린다면 똑같거나 심지어 더 나빠진 듯한 삶이, 6개월, 1년, 3년, 5년, 10년을 지나고 보면 괜찮아진 것 같다. 어둡고 우울하고 거친 바다를 느릿하게 항해하며 결국 열대의 낙원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안전하고 안락하게 살만한 섬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프루는 능숙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도 가끔은 있으리라."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가끔'이 코일과 웨이비에게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우리의 주인공이 자신의 못난 몸을 "뚱뚱하다기보다는 힘센 장사처럼" 느낄 때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힘들게 수리했지만 하룻밤 태풍에 어이없이 사라진 나무집은 이미 코일에게 아무런 나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얻어맞고 할퀴어지고 찔렸지만, 코일은 살아남았고 그만큼 탄탄한 사람이 돼 눈앞의 행복을 자신 있게 거머쥐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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