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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지만 뻔하지 않은 알레고리

정보라의 '저주토끼'

by myungworry

올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읽다. 아마 부커상 소식이 없었으면 안 읽었겠지.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 독자들이 그럴 것이다. 부커상의 명성이 워낙 높아서 이 책을 집은 건 아니고, 한국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라 궁금해서 그랬다.


해외의 유명 문학상을 받은 소설이라고 해서 항상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저주토끼'는 상을 못받을지는 모르지만 읽기가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환상-공포 문학 단편집이라 생각한다. 다만 왜 부커상 후보에 올라갔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한국의 환상-공포 문학에는 존재해 한국 독자에게는 익숙하지만 서양의 환상-공포 문학에는 부재해 참신해 보이는 무언가가 '저주토끼'에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뿐.


알레고리가 확실해 작가의 의도가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나는데, 또 너무 확실해서 뻔해 보이지는 않는게 장점.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머리'는 좌변기로 빠지는 배설물, 분비물 등이 조금씩 인간의 형태를 이루어 원래 주인을 '어머니'라고 부르다가 결국 그 어머니를 대체하는 이야기다. 특별한 업적도 감정도 없이 세월이 흐르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늙어있는 사람이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젊음을 되찾는 이야기랄까. 그렇다고 생물학적, 기계적 수술로 젊음을 되찾으려다 파멸하는 흔한 이야기로 수렴되지는 않아 흥미롭다. 제일 흥미진진하게 읽은 것은 '몸하다'. 생리가 멈추지 않아 약을 먹다가 부작용으로 임신을 한 여성 이야기다. 이 여성은 임신에 이를만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 성모 마리아를 떠올릴 때쯤 작중 의사는 태연스럽게 "그럼 빨리 아이 아빠가 돼줄 사람부터 찾으셔야 해요. 아이를 뱄으면 당연히 아빠가 있어야 하잖아요?"라고 쏘아붙인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임신이 된 것이 아니라 마치 지금 태아는 무정란 같은 상태이며, 그렇기에 남성 배우자를 찾아 태아를 제대로 발육시켜야 한다는 소리다. 작중에선 모두 이 이론을 진지하게 믿고, 그래서 그때부터 여성은 아이 아빠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유머러스하게 가부장제를 뒤튼다. '덫'은 너무 끔찍한 이야기다. 너무나 변태적이고 범죄적인 상상이다. 악당도 적당히 나빠야지, 이 악당의 발상은 상상할 수 없게 나쁘다. 악당이 자기 가족을 대상으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부커상 후보 소식 이후 출판사에서 긴급히 마련한 기자회견에 작가가 나왔는데, 상당히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부커상을 받을 것 같지는 않지만, 다음 작품은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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