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과 비인간 생물의 경계에서

조지 밀러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by myungworry

조지 밀러의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를 전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와 비교하며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지만, 난 '퓨리오사' 그대로 좋았다. '분노의 도로'가 특출하게 뛰어난 영화이지, '퓨리오사'가 못 만든 영화가 아니다. '분노의 도로'가 별 다섯 개라면, '퓨리오사'는 네 개 혹은 네 개 반이다. '분노의 도로'는 마지막 '매드 맥스' 시리즈였던 '썬더돔'(1985) 이후 30년 만에 뜬금없이 나와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퓨리오사'는 재개된 '매드 맥스' 세계관을 확장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매드 맥스가 등장하지 않는 매드 맥스 시리즈가 무슨 의미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분노의 도로'에서도 매드 맥스 못지않게 퓨리오사와 워보이, 임모탄의 활약이 컸다.

'퓨리오사'는 '분노의 도로'보다 조금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문명 세계에서는 금기시되는, 그래서 역겨운 장면이 몇 번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처형당한 시체들에 개가 달려든다거나, '식인종'이 공공연히 언급된다거나, 절단된 사지가 걸려 있고 거기 구더기가 슨 것을 모은다거나(아마 모아서 어떠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면들에 비하면 오줌을 투명한 병에 따로 모아서 이래저래 사용하는 것 정도는 별로 역겹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분노의 도로'에 처음 나온 워보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생물에게 엄격한 생사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면 '퓨리오사'에선 인간과 비인간 생물의 경계가 시체 뜯는 개, 구더기 등에 의해 무너진다. 이 영화의 주요 빌런이라 할만한 디멘투스의 최후 역시 인간과 비인간 생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죽음은 가까이 닥치기 전에는 누구에게나 추상이지만, 비인간 생물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퓨리오사'가 좀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걸까.

중반부 이후 벌어지는 전투트럭을 활용한 추격전과 전투장면은 명불허전. 15분 이상 입을 벌리고 보게 된다. 바이크 갱단과 시타델의 40일 전투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거나, 디맨투스의 최후를 처리하는 방법도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의 엔딩과는 차이가 있다. 볼 때는 좀 의아했지만, 보고 나니 꽤 인상적인 솜씨였다는 생각도 든다. 일종의 안티 클라이맥스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마무리하는 79세 조지 밀러의 패기.

작가의 이전글옳은 말을 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