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리치 '더 커버넌트'
**스포일러 있음.
개봉 중인 '더 커버넌트'의 해외 원제는 '가이 리치의 더 커버넌트'다. 가이 리치가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긴 하지만, 제목에 이름을 박아 넣을 정도로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감독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며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들어찬 일요일 저녁 영화관을 찾았다. (제작사 측은 '커버넌트'(2006)라는 영화가 이미 있기에 혼돈을 피하기 위해 '가이 리치의'를 넣었다고 한다.)
9.11 테러 이후 탈레반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과 아프간 통역사 이야기다. 미군 상사 존 킨리는 고집은 세지만 능력은 있는 통역사 아메드를 고용한다. 아메드는 자신이 하는 일은 '번역'이 아니라 '통역'이라고 말하며, 때로 통역사의 권한을 넘는 일을 한다. 킨리는 그가 조금 못마땅하다. 킨리는 아메드의 도움으로 탈레반 무기가 숨겨진 곳을 급습하지만, 몰려든 탈레반 군인들의 저항을 받는다. 부대원은 다 죽고 킨리와 아메드만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치다가, 킨리마저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아메드는 극한의 육체적 노력과 기지를 발휘해 움직이지 못하는 킨리를 싣고 100km 이상 이동해 미군 기지로 귀환한다. 킨리는 몇 주 뒤 병원에서 깨어나 미국으로 돌아가 전역하지만, 곧 아메드의 처지를 듣는다. 아메드는 당시의 일 때문에 탈레반의 최고 공적이 됐고, 갓 출산한 아내와 함께 신분을 감춘 채 도주 중이다. 통역사들은 미군을 돕는 대가로 비자와 영주권을 받기로 했지만, 이 역시 공고한 관료제의 벽에 막혀 지지부진이다. 킨리는 책감에 휩싸인다. 그는 집을 담보 잡혀 돈을 마련한다. 이 돈으로 민간 군사 업체를 고용해 아메드를 탈출시키려 하고 아프간으로 향한다.
아메드가 영웅적인 헌신으로 킨리를 미군 기지로 귀환시키기까지가 2/3 정도이고, 남은 분량은 킨리가 아메드를 도우러 가는 내용이다. 킨리는 아메드의 도움으로 미국의 안전한 집에서 안락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울러 조국이 도움을 준 이방인들에게 '계약'(커버넌트)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은 다르덴 형제 영화에서 익숙하게 봤던 인물이지만, 물론 '더 커버넌트'는 칸영화제 출품을 기다리는 유럽의 아트 필름이 아니다. 미군과 탈레반의 전투, 아메드와 킨리의 탈출, 아프간으로 신분을 숨기고 들어간 킨리와 탈레반의 추격전 등에서 스릴을 자아내는 액션, 스릴러 영화다. 가이 리치의 솜씨는 좋다. 제이슨 스타뎀과도 '캐시트럭' 같은 볼만한 액션 영화를 만들었으니, 그보다 한 차원 깊이 있는 배우인 제이크 질렌할과 함께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제3세계 사람이 필요할 때 활용한 뒤 필요 없으면 모른 척하는 미국의 태도에 대한 비판, 이를 대신 만회하려는 개인에 대한 조명 같은 것도 흥미로운 구도다.
조금 기분이 묘한 건 최종 국면에서 탈레반이 처리되는 방식이다. 킨리와 아메드 가족은 가까스로 민간 군사 업체와의 접선 장소에 도착하지만, 이미 이들을 잡으려는 중과부적의 탈레반이 모여든 상태다. 탄약은 떨어지고 최후의 순간만이 남았다. 그 순간 최첨단 미군 공격 무기가 신의 은총처럼 도착한다. 공격 무기는 별다른 수고도 없이 열화상 카메라에 잡힌 탈레반 병사들을 쉽게 쓸어버린다. 아마 이 영화에서 묘사된 미군 무기의 성능은 실제와 별 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엔딩은 미군 무기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쇼케이스 같은 느낌이 든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광고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