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은 우리에게 외눈박이가 될 것을 종용하지 않는다

by 우아한 질문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지적 도구는 단연 ‘단순성’이다. 넘쳐나는 정보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 속에서, 단 하나의 명쾌한 원리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그보다 매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 어떤 인플루언서는 “좋은 책은 오직 단 하나의 렌즈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책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원시인 가설’, 즉 진화론적 혹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일상과 행동의 유일한 잣대로 삼는 태도다. “지금 이 행동을 수만년 전 원시인이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Yes”이면 그것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No”라면 병리적이거나 인위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 밤늦게까지 인공조명 아래 있는 것, 가공식품을 먹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원시인이 하지 않았으므로 나쁜 것이 된다.


이 같은 사고법은 매력적이다. 복잡한 현대 생활의 모든 선택을 단 하나의 질문으로 정리해준다는 게 얼마나 편안한가. 인지 부하가 극적으로 줄어든다. 매 순간 선택과 판단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이런 단일 기준은 심리적 안도감을 줄 뿐만 아니라, 복잡한 현상을 단숨에 이해했다는 쾌감마저 선사한다.


하지만 하나의 렌즈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으며, 때로는 치명적인 논리적 허점을 동반한다. 이를테면 원시인은 생존을 위해 타 부족을 무자비하게 배척했고, 폭력이 난무했으며, 위생 개념이 없어 영아 사망률이 극히 높았다. 이것도 원시인이 했으니 자연스럽고 옳은 행동인가? 하나의 렌즈에만 의존하여 모든 현상에 적용하려는 순간 사고는 경직되고 왜곡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하기 십상이다. 이는 어떤 현상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당위를 무비판적으로 도출하는 논리적 비약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원시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구석기 시대 인류는 수십만 년에 걸쳐 아프리카, 유라시아, 아메리카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 어떤 집단은 하루 평균 6시간 잤고, 어떤 집단은 그 이상을 잤다. 또 어떤 집단은 채식 중심이었고, 어떤 집단은 지방과 단백질로 연명했다. 단일한 표준 원시인이란 게 없다. 우리가 상상 속에서 소환하는 원시인은 대개 내가 이미 옳다고 믿고 싶은 결론에 맞춰 역으로 구성된 허상이다.


단일 렌즈에 대한 맹신은 필연적으로 ‘환원주의(Reductionism)’의 함정으로 이어진다. 생물학적 기질이나 생존 본능만으로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 고도화된 윤리 의식, 추상적인 문화 예술 현상을 설명하려 들면 맥락은 심각하게 증발해 버린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원초적 욕구를 지닌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의미를 탐구하고 자기(self)를 실현하며 철학적 사유를 통해 본능을 거스르기도 하는 복합적인 존재다. 인간 심리의 다차원적인 면모를 단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는 것은 현상을 명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앙상하게 빈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가진 도구가 망치뿐이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며 이를 ‘망치의 법칙’이라 경계한 바 있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파악하게 해준다는 렌즈에 매몰되면, 우리는 그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반례와 불편한 진실들을 무의식적으로 통제하거나 삭제해 버린다. 내가 가진 렌즈에 세상의 크기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확증 편향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단 하나의 법칙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확언하는 책이나 사상은 경계의 대상이어야 한다. 실제로 지적으로 정직한 책들은 단일 렌즈를 선물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던 렌즈를 해체하거나, 여러 렌즈가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거나, 이 프레임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책들이다.


훌륭한 책은 우리에게 세상을 해석하는 강력하고 새로운 렌즈를 하나 쥐여주되, 그 렌즈 역시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겸허히 일깨워 주는 책이다. 아울러 세상을 더 단순하게 보이게 하는 책이 아니라, 내가 왜 세상을 단순하게 보고 싶어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하나의 렌즈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욕구 자체가 어디서 오는지를 물어보게 만드는 책, 그 욕구의 이름이 ‘이해’가 아니라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일 수 있다는 것을 직면하게 해주는 책이다.


우리의 사고가 편협해지지 않으려면 다채로운 학문적 렌즈들을 교차로 활용해야 한다.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어 보고, 각 이론이 가진 한계와 모순을 발견하며, 이를 다시 통합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 속에 진짜 지혜가 있다. 세계는 단 하나의 공식으로 풀이될 만큼 납작하지 않으며, 인간은 단 하나의 본능으로 환원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불확실성을 견뎌내고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여러 시선을 조화롭게 통합해 낼 때, 더 온전한 진실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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