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퇴사하라는 현 직장 vs. 빨리 출근하라는 새 직장
대부분의 회사는 바쁩니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현 직장도 바쁘고, 이직을 하려고 하는 새 직장도 바쁠 확률이 높죠. 그렇다는 건 현 직장에서는 내가 퇴사를 하더라도 최대한 오래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고, 새 직장에서는 내가 하루라도 빨리 출근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가 일정을 야무지게 조정하지 못한다면 이번주 금요일까지 현직장에 근무하고, 조금도 쉬지 못한 채 곧바로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새직장에 출근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퇴사일과 입사일 사이, 내가 쉬면서 리프레시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스스로 벌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일정 선정과 조율에 관한 기술이 아닐까 싶어서 이번 글을 준비했어요.
이직하려고 하는 회사에서 최종 면접 합격 연락이 올 겁니다. 이후 레퍼런스 체크나 연봉협상, 신체검사 등의 몇 가지 절차가 남아있다고 해도 '최종 면접'이라는 것을 보고 들은 순간부터 퇴사 욕구가 올라오겠죠? 그래도 최종 근무 조건의 협의가 완료되었고 입사가 최종 확정되었음을 공식화하는 '오퍼레터'가 올 때까지는 꾹 참으셔야 합니다.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는 말만 믿고 현 직장에 퇴사 통보를 했는데, 갑자기 새 회사에서 채용을 취소하거나 번복하는 등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최종합격 후 '최종 오퍼레터'가 발송되면 그 때부터 퇴사 통보를 하시면 됩니다.
퇴사통보는 30일 전에 해야 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회사가 근로자를 해고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30일 전에 통보를 해야 하지만, 근로자는 30일 전에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해야 할 법적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제든지 회사에 계약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회사가 근로자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는 경우에도, 내가 퇴사 의사를 밝힌 날로부터 1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표의 효력이 생기죠.
원칙적으로는 '당일 퇴사 통보 후 퇴사'도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당일 퇴사는 절대 매너가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조직에서 나의 퇴사로 인해 발생한 인력 공백에 대비할 수 있도록,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상황이나 인수인계 등을 고려해서 퇴사일을 정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퇴사 통보를 한 날로부터 2주 정도는 여유를 두고 퇴사 예정일을 잡는 게 좋겠죠.
1) 새 직장에 출근 희망일을 먼저 확인하기
저는 인사팀과 처우 협의가 마무리될 때쯤, 해당 회사에서 생각하고있는 입사 희망일을 먼저 확인하는 편입니다. 이전 글 '연봉 협상의 기술'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내 패를 먼저 까는 것보다 상대방의 패를 먼저 확인하는 게 더 좋기 때문이에요.
업계나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새 직장에서는 ASAP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서류 지원을 받고 면접을 보고 처우 협상까지 오는 동안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채용이 확정된 지원자가 빨리 입사를 했으면 하는 거죠. 그러나 새 직장에서 제시한 입사 희망일에 무조건 출근 일정을 맞추지는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현 직장을 정리하는 데 있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도 알고는 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새 회사가 생각하고 있는 일정은 먼저 확인해놓되, '언제는 불가능하고 언제는 가능할 것 같다'라는 어설픈 확답을 내리기보다는 '일정에 대해서는 좀 더 협의가 필요할 것 같다'라는 스탠스에 대해서만 명확히 전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오퍼레터를 받지 못한 상황을 활용한다면 이런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 주신 일정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최종 오퍼레터를 발송해주시는 날짜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되나요? 오퍼레터를 받아야 현 직장에 오픈을 하고 퇴사일을 협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말씀주신 일정에 맞춰 바로 출근을 하기에는 일정이 좀 촉박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오퍼레터를 전달주시는 일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한번 확인해봐주시면, 저도 그에 맞춰서 퇴사일과 입사일을 고민해보고 한번 더 연락드릴게요.
혹은, 이런 답변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현 직장과도 협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긴 하지만, 우선 지금 말씀주신 일정에 입사일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보니,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할 것 같거든요. 입사일 관련해서는 제가 현 직장과 정리를 하고, 추후 다시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예를 들어 1) 복잡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업무 인수인계에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던가 2) 현재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그 프로젝트까지는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던가 등이 이유로 일정 협의의 이유를 대는 거죠.
2) 현 직장과 퇴사일 정리하기
앞서 말씀드렸듯, 내가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한 날로부터 최소 2주 이후를 퇴사 예정일로 잡고 현 직장과 협의를 하면 됩니다. 보통 2~3주 정도면 업무 정리나 인수인계가 가능하고, 면담이나 퇴직원 작성 등 필요한 행정 절차들도 마무리하는 데도 큰 문제는 없으실 거예요.
다만, 조직 또는 담당 프로젝트의 상황 때문에 퇴사일을 조금 더 늦췄으면 좋겠다는 팀장님의 간절한 요청을 받게 되실 수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이런 식으로 답변을 해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팀장님, 저도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다 마무리를 하고 가고 싶었는데, 새 회사에서도 빨리 입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라 조율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계속 회사 생활을 하면서 거의 쉬지 못하고 달리기만 했던 것 같아서, 다만 며칠이라도 쉬고 새 회사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죄송해요. 그래도 지금 담당하고 있는 업무들 관련해서는 인수인계 꼼꼼하게 해서 최대한 문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무작정 '안된다', '못한다'라고 거절을 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1) 팀장님이 말씀하시는 현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나 2) 개인적인 상황이나 새 직장의 요청들 때문에 퇴사일정을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3) 퇴사 후 업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할 것임을 이야기 했을 때 조금 더 부드럽게 거절을 하고 협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3) 다시, 새 직장과 출근일 정리하기
현 직장과 퇴사일을 확정했다면 다시 새 직장과 협의를 통해 출근을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이때는 퇴사일로부터 최소 1~2주 정도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놓고 그 이후에 출근을 하는 것으로 협의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지금 바쁘신 건 알겠는데 저도 좀 쉬어야죠'라거나, '여행가고 싶어서 더 빨리 입사를 하는 건 안되겠는데요?'처럼 말을 하자니 껄끄럽잖아요? 제가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협상의 꼼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7월 1일에 마지막 근무를 하고 잔여 연차를 소진한 뒤 7월 8일자로 퇴사일을 잡았다고 해볼게요. 이 때 새 회사에게 '저 7월 1일까지 마지막 근무를 하기로 했어요"라는 것을 밝히게 되면 당장 7월 1일을 기준으로 1~2주 내에 입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저 7월 8일자로 퇴사일을 잡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이 날을 기준으로 출근일을 협의하셔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버는 겁니다.
만약, 소진할 잔여 연차가 없거나, 잔여 연차를 소진하지 않고 돈으로 보상을 하고 싶은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고요? 그럴 때는 현 직장의 핑계를 대는 거죠, 뭐.
지금 현 직장과 퇴사일을 논의하고는 있는데 협의가 쉽지는 않네요. 7월 8일 이후에 퇴사일이 잡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우선 B사의 입사일부터 확정을 했으면 좋겠는데, 혹시 7월 15일이나 21일 정도 어떠시겠어요?
이런식으로, 퇴사일이 이미 결정되었으나 결정되지 않은 척하면서 일정 협의의 여지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거죠. 다만 이러한 핑계는 이미 이직 경험이 많거나 고연차 직급이라 협의에 능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이직의 경험이 적고 연차가 적을 때 활용하시길 추천드려요.
여러분. 우리가 보통 현재 직장에 지쳤을 때 이직을 하게 되는데,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하는 것도 만만치않게 지치는 일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입사와 퇴사 사이에는 꼭, 리프레시를 하실 수 있는 공백의 시간을 가지시면서 쉬어가시는 걸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