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왜 디자인사는 윌리엄 모리스로부터 시작되는가
*이 글은 시각디자인 전공 수업 당시 <왜 디자인사는 윌리엄 모리스로부터 시작되는가> 라는 주제에 대해 과제로 작성했던 에세이입니다.
저는 사실 이번 수업 때 ‘윌리엄 모리스’라는 인물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래서 이 과제를 받았을 때, 공업디자인을 배우던 지난 2년 반 동안 제가 디자인사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고등학교 때 서양미술사에 대해 조금 읽어본 것이 전부였고, 공업디자인 수업시간에도 디터 람스나 안도 다다오 등의 유명 디자이너들의 이름만 조금 언급하고 바로 실습 위주의 수업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저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과제를 계기로 디자인사 공부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윌리엄 모리스가 어떤 인물인지, 그의 기본적인 정보에 대해 알기 위해 포털에 검색하였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미술대사전 에 따르면 그는 영국의 공예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며, 중세를 동경하였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예술의 기계화에 반발하여 손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또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을 주도했고, 아르누보의 성립에 영향을 주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반면, 산업혁명의 제 성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부정적이어서, 일종의 시대착오가 있었다고도 하더군요. 온라인은 이 정도의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했기에, 윌리엄 모리스의 사상과 활동들에 대해 더 자세히 찾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 포털에 윌리엄 모리스를 검색하고 책 한 권을 대출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이라는 산문집을 골랐는데, 윌리엄 모리스가 강연한 내용과 잡지에 제제한 여러 글을 엮은 책이라 그의 생각을 엿보기에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윌리엄 모리스에 대해 처음으로 가진 의문은, 그가 디자이너가 아니고 공예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공예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통해 이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책 전반에서 예술과 노동을 분리하지 않고 모두가 아름다움을 향유해야 한다고 그는 꾸준히 주장합니다. 그 주장과 함께 그는 인도의 사례를 하나 언급합니다. 영국이 인도를 탐냈던 이유 중 하나는 18세기 이전까지 인도의 면직물 산업이 다른 어떤 식민지보다 강력했고, 제품의 질이 우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방적기를 개발하면서 수공업에 의존하던 인도산 면직물보다 원가를 떨어뜨렸습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이를 두고 피정복 민족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예술활동을 도처에서 포기했고, 정복자들에게 순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예술을 무가치하다는 듯이 던져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공예품들은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문명을 이끌어나가는 나라에서 예술이 건강한 상태로 있어야 비로소 예술이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분을 읽고 윌리엄 모리스가 그 당시 영국의 시대상에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현대 디자인에서도 중요시할 문제 같아 인상 깊었습니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과 인도에서 발생했던 이와 같은 문제들은 윌리엄 모리스의 바람과 달리 현대에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알리, 테무, 쉬인과 같은 중국의 대형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저가와 물량을 앞세워 제품을 쏟아냅니다. 패션업계는 빠르게 변하는 유행을 좇으며 서로의 디자인을 베껴 천편일률적인 옷을 만들어내고, 그렇지 않은 옷들은 손쉽게 버려집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인간이 노동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의 표현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또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행복하지 않은 노동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오늘날 문명 세계의 최우선적인 의무라고 말합니다. 비록 윌리엄 모리스가 비판한 값싸고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제품들이 현대 시장에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디자인의 미래가 마냥 암울하지만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두가 인터넷과 공공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전문적인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만큼 창작물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사실 최근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을 보며, 앞으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의 사상과 생각을 접한 후, 디자이너는 지금도 앞으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AI가 만든 디자인은 결국 인간의 감각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방적기계가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장인들이 빚어낸 면직물의 섬세함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디자인사가 윌리엄 모리스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한 공예가를 넘어 디자인을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본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예술과 노동,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예술가들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제시했습니다. 그의 사상을 통해 저는 디자인의 출발점이 기술이나 유행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가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 작업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생각을 작업물에 담아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