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획자의 서툰 자기배려 일기 1
일을 시작한 이후로 (특히 공공기관의 조직원으로 살다가 퇴사하고 스스로를 '독립'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에게 제일 어려운 질문은 '요즘은 어디에 있어?'라는 질문이었다. 물리적이고 장소적인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닌, 사회적인 맥락의 세련된 질문이다. 대게 '당신의 현 직장은 어디인가?'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나는 이 흔한 질문에 쉽게 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활동의 방식'을 설명하며, #독립기획자라는 말을 사용할지, 아니면 '고용의 방식'을 설명하며 #프리랜서 혹은 #1인기업이라고 이야기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 대답들은 종종 '생계의 방식'과 연결되며, #불안정한직업 혹은 #비정규직이라는 말로 호환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 질문은 #직장 혹은 #수입원을 고려한 문장이었다.
때로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내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사회 활동과 경제 활동을 하고 있음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요청했다. 그리고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직장'이 아니라 '직업'임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긴 대화를 상황이 아니거나, 충분한 대화가 어렵다고 느낄 때면 그저 #요즘은여기저기에있다라는 말로 나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설명하려고 하는 걸까.
청소년 시절부터 수많은 자기소개서들이 내 손을 거쳐갔다. 지금보니 귀엽다.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싶은 한 고등학생의 대학입시용 자기소개서, 내가 얼마나 준비된 자원활동가인지를 한껏 자랑하던 참가지원서, 해외 시장에서 마케팅을 공부하겠다던 교환학생 지원서, 고작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이제 경영 컨설턴트가 될 준비가 되었다며 삶을 회고했던 입사지원서, 방황하던 예술 비전공자가 예술경영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잔뜩 써놓은 포트폴리오까지.
내 글을 읽을 이가 누군지에 따라 글의 내용과 모양이 달라졌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글들이 나와 함께 성장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내 자기소개서를 보며 유치하다며 웃어제꼈다. 하지만 인생이 글에 담긴다는 것,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그 글들이 설령 어리숙하고 어설플지언정, 그 시기의 나를 관통하는 고민들이 담겨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2020년, 스스로를 기획하는 사람이라 부르는 임현진을 돌아보았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도 자기소개의 문장이나 간단한 소개의 글을 요청받을 때면 늘 고민한다. 그 글 역시 매 순간 변화했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서툴게만 보일 그런 소개의 글을 다시 썼다. 몇몇 문장은 나를 설명하고 있지만 여전히 쑥스러운 이력의 글에 가깝다.
독립 프로듀서이자 축제 기획자로, 공연, 연극, 다원예술, 거리예술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동시대의 보편적 삶과 단상들이 도리어 예술의 관습과 형태를 새롭게 하는 것을 즐긴다.
공연 기획자로 함께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극단 몸꼴, 비주얼씨어터꽃, 아이모멘트 등으로, 함께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거나, 완성된 작품들을 국내외 예술계에 소개하는 일을 했다. 최근에는 호주의 예술가 매들린 앤 팀, 한국의 김지현과 미디어-소리 설치 프로젝트인 <비 오는 날이면(2019)>을 제작하여 멜버른 아시아토파 페스티벌에서 이를 선보였다.
축제 기획자로 하이서울페스티벌(2010-2012)과 안산국제거리극축제(2014-2015)를 거쳐, 현재는 포항거리예술축제(2018-), 과천축제(2018-)에서 일하고 있다. 축제를 통해 공동체를 위한 예술, 공간 민주화의 관점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실험과 시도들을 추구한다. 축제에서 예술가들이 새로운 지역과 공간을 만나게 하고, 이를 작품 안에 담아내도록 연결하는 것을 즐긴다. 최근 기획한 ‘창작 랩 프로젝트 <이야기北>’은 새로운 형식의 축제로, 예술가들과의 공동 연구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소재와 방법론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 작업을 통해 매개자이자 협력자로서 기획자의 가능성에 대해 몰두하게 되었다.
한국거리예술협회의 운영위원으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거리예술마켓’ 사업의 기획을 맡았으며,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서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독립 프로듀서들의 네트워크인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 전문사를 취득했다.
몇 문장이 되지 않는 글에서, '업'을 찾은 이후의 나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문장으로 정리하기 힘든 순간들과 고민들을 채 담아내지 못했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내가 경험한 것들, 그리고 내가 마주한 세상들이 뒤섞여야 한다. 어쩌면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 것도 이런 갈증의 해소를 위한 것일지 모른다.
요즘의 관심사는 뭐야?
때로는 나를 향한 질문이 '요즘의 관심사는 뭐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 질문 역시 쉽게 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대답하는 재미는 훨씬 있을 테니까. 이 시리즈 '독립기획자의 서툰 자기배려 일기'는 충실하고도 재미있게 나와 나의 일을 소개하기 위한 괜한 전략이다. 예술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것에만 익숙했던 내가, 나의 포트폴리오를 글로 정리해본다. 몇 개의 글로 구성될지는 모르겠지만, 쓰기를 마칠 즈음에는 지금의 내가 적당한 언어로 설명되어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 전문사 김해리님의 논문 <밀레니얼 예술경영자의 무경계 실천사례연구(2019)>의 영향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