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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면지언니 May 28. 2021

눕기를 선택한 마르셸 프루스트

[책 리뷰] 눕기의 기술: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

눕기의 기술: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

(베른트 브루너, 현암사)


몇 년 전에, 관객들이 그저 찾아와서 돗자리에 눕고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아무거나 하다가 쉬고 가야 하는 예술 프로젝트 <게으름의 낭만>의 스태프로 함께 일했어요. 온갖 게으름의 장치들을 설치해두고, 호숫가 옆 잔디 큰 나무 아래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았죠. 관객들에게는 입장할 때마다 새로운 이름이 붙여집니다. ‘내 이름은 낮잠, 내 이름은 낭만, 내 이름은 괜찮아, 내 이름은 느리다, 내이름은 이불’. 이름을 새로 붙이고, 모두 함께 한없는 게으름을 실행합니다. 한 번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 쉽지 않은 게으름 프로젝트. 끝이 날 무렵 함께 작업한 동료 언니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어요.

그 책이 <눕기의 기술>입니다.

[사진] 프로젝트 '게으름의 낭만(김정은 작)'


책은 우리가 왜 누워야 하는지, 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얼마나 값진 일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그리고 이내, 모두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눕기, 잠들기를 권유합니다. 책의 구성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에게 눕는다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일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여러 눕기의 방법들을 제시해요. 철학, 인문학, 과학, 문학, 예술, 언어학을 가리지 않고 누웠던 사람들, 누웠던 기억들을 들춰내며 여러 눕기의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지금 누워 있는가?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중략) 측정 가능한 성과를 중시하고, 순발력 있는 행동으로 결단력을 보여줘야 하며,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걸로 근면함을 입증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누운 자세는 푸대접받기 일쑤다. 하지만 누워 있는 것은 짙은 안갯속에서 산책하는 것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다. 이런 산책의 막바지에 우리의 생각은 종종 전보다 더 명료해진다. 시간적인 압박과 효율성을 뒤로하고 의식적으로 눕는 행위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으나, 매우 값진 행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지금 누워 있는가] 중

이 책은

눕는다는 행위를 여러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 생각을 명료하게 만드는 일
- 생리적이고 심리적이며 창조적인 면을 포함
- 산책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해주는 일
- 매복해서 기다리는 중
- 일종의 반란 행위 * 드러눕는다
- 생각을 가다듬고 숙고하기 위한 연습
- 진보와 퇴보라는 강박적 논리에서 해방되는 일
- 인간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주기적인 무의식의 상태
- 밤낮을 막론하고 누워 있는 것이 창조력과 주의 집중을 고양시키는 최상의 전제
- 집중력에 도움이 되며, 앉기에 뒤지지 않음


다만, 눕는다는 행위는

아래의 단어들을 연상시키기도 하죠.
- 피곤, 냉담, 의욕 결여, 게으름, 어정쩡함, 수동성, 휴식

삶의 속도에 대하여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레바인은 ‘계속하여 변하는 리듬과 시퀀스, 스트레스와 쉼, 순환과 새로운 자극으로 이루어진 어지러운 카덴차(cedenza: 음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반주 자유 연주)’라고 했대요.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내적 불안이 잠식한 삶으로부터 자유로운 눕기를 결심하는 것, 일상에서 더 자주 실천하고 싶어 졌어요.


저는  눕지 못하거나, 누울 때마다 어쩐지 찜찜하고, 지금 잠들어도 되는 걸까 생각하곤 했어요. 눕는다는 것은 정말 최후의 선택처럼 놔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빴죠. 그리고 누워서도 수많은 갈등을 했어요. 다시 일어나야 할까, 얼른 밀린 것들을 마무리해야 할까, 지금 누워 있는 것은 게으른  아닐까. 그런데,  책에서는  눕는다는 행위들을 거침없이 분석하고 파헤치며, 저의 의문들에 반기를 제시합니다.


문득, 맘에 드는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제가 밑줄을 친 문장들이 크게는 ‘나의 눕지 못하는 심리를 설명하는 문장’과 ‘누워야 하는 온갖 이유들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마치 지침서 마냥, 이 책을 눕기를 도와주는 책으로 삼기로 했죠.


편하게 눕는다는 것이 홀대를 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요.
- 우리가 매 순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것
-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불을 켜놓고 일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세상이라는 것
- 눕는다는 것은 낭비로 여겨짐
-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재충전의 의미로 여겨짐


그리고 잠은 이렇다고 합니다.
- 새로운 가능성과 지평을 열어주고, 해결책들을 제공하고
- 소망을 채워주는, 그러나 가끔은 섬뜩한 악몽에 시달리게 하는 꿈들로 가득 차 있다.
- 활동적인 삶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극복하게 해 줌
- 과도하게 깨어 있는 것은 종종 ‘우울증의 증상이자 원인’

다만, 잠은
- 많은 일벌레들에게 수면은 의심스러운 것
- 수면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겼던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에디슨, 처칠
- 괴테의 파우스트는 ‘내가 평화롭게 나태의 침대에 몸을 눕힌다면 그건 내게 당장에 존재가 중단되는 일이리라!’라고 했답니다.


[사진] 공연 '한 사람을 위한 자장가(보이스씨어터몸MOM소리)' 중

얼마 전부터 자장가를 소재로 공연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단체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한 자장가', '숨, 자장가'라는 공연을 함께 해오고 있어요. 기획자인 저마저 공연 중에 스르륵 잠이 올 정도로 쉼과 숨의 시간이 있는 자리인데, 책을 읽으며 이 공연 생각이 많이 났어요. 사진으로 소개하는 '한 사람을 위한 자장가'는 오로지 단 한 사람을 위한 해먹을 두고 보이스 퍼포머들이 자장가의 소리를 만들며 공연을 엽니다.



“창조성은 일상적인 활동으로부터 완전히 물러났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 예술가들에겐 수동적인 시간들이 필수적이지 않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셸 프루스트는 침대, 눕는 것, 자는 것으로부터 여러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그리고 수평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한 수많은 창작자들, 작가들이 있었네요. 놀라운 사실은 잠을 밤에 몰아서 자는 ‘모노블록(monobloc)’ 형태의 수면이 현대의 노동 분업 사회로 인해 탄생한 상대적으로 새로운 습관이라고 해요! (이럴 수가!) 게다가 어떤 직장에서는 시에스타가 활력과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적용하여 회복에 도움이 되는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주변의 소음과 방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직장 피로 관리법’을 적용하고 있답니다. (어딘가요!)


저는 어쩐지 눕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책을 꺼내 들고는 마음의 위안을 얻었어요. 그리고 눕기를 잘했다고 위안하곤 했죠. 삶에 늘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데, 그 순간들을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할 때는 없으셨나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책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여러 순간들을 연관하여 상상해보았어요. 그리고 여백을 주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문화예술, 창작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로서 필요한 여백이 아닐까 생각하면서요.


곳곳에 숨은 여러 자료 사진, 이미지들을 살펴보는 것도  다른 묘미예요. 책을  읽고 그림만 다시 한번 훑어보았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온갖 눕는 사람들, 눕는 방법들, 눕기를 돕는 도구들이 증거자료처럼 남아 있어요.



당신은 눕기를 선택한 마르셸 프루스트인가요, 눕기에 저항한 파우스트인가요?
아니, 그 누구도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필요한 눕기를 실천하고 있나요. 원하는 잠을 충분히 실천하고 있나요. 오늘 밤은 걱정 없이 푹- 잠들기로 결심했나요?


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잘 누워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라클 모닝’과 이 책은 참 반대되는 책이에요. 이 책은 이 시대를 ‘새로운 수평의 시대(New Horizontal)’라고 칭하기까지 합니다. 성과주의, 발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는 것이지요. 만약 이 책을 읽으신다면, 마음껏, 원하는 부분에만 밑줄을 쳐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눕는다는 것이 이렇게 값진 일인데 말이에요!


“우리에게 제대로 된 눕기를 가르쳐줄 만한 조언서는 없다. 수평 방향의 문법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대의 불안하고 분주한 문화 가운데 꼭 필요한 정도만으로 위축된 누움의 미학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그저 재발견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기술이며, 그에 대한 이해를 더욱 도모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 [눕기의 기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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