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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Jun 20. 2023

내가 아는 내가 맞나?

본격 자아탐구


사람을 대면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성격이 활발하다거나 낯을 덜 가리는 게 아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숫기가 없다, 내성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고 친구 사귀는 걸 힘들어했다.

유치원에 가는 일도 늘 힘들었다. 엄마도 할머니도 없이 혼자 그 안에서 ‘생존’하고 친구를 구해야 하는 그곳이 너무 낯설고 버거웠던 기억이다.

(적응을 잘 못하고, 소극적인 나를 위해 할머니는 유치원을 갈 때마다 과자를 가져가서 애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쥐어주셨고, 아이들은 과자가 있는 나에게 잠깐은 다가왔지만 과자가 사라지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 곁을 떠났다.

어떤 날은 할머니가 56색짜리 엄청 큰 크레파스를 쥐어서 보내 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반짝 친구들이 몰려와서 “나 이거 한 번 써봐도 돼?”라고 하며 다가왔지만, 그 당시 나에게만 있던 금색 크레파스를 쓰고는 부러뜨려왔다.

엄청 속상했지만, 화내는 법도 잘 모르고 애당초 그 아이랑 그날 처음 말 해 본 날이어서 말 걸기도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낯가리는 날 위해 아이들의 환심을 사는 법을 알려준 것이었는데, 투명한 어린이들에게 환심과 관심은 그저 잠깐 스치는 것이었을 뿐, 결국 적응은 나 스스로 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형제도 없이 외동딸로 자라서인가.

누군가와 부딪히고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 꽤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냥 혼자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 (어릴 때부터도 만화보단 지금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훨씬 좋아했었다)이 더 좋았고, 나 혼자 놀았던 일들, 재미있던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에게 전하는 게 훨씬 신나는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은 바빴고, 나는 유치원 그리고 학교엘 가야 했으니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나는 ‘인싸’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맞는 소수의 친구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고 조용히 그들과 소통하며 잘 지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 대한 집착도 생겨난 것 같다.



나랑만 놀았으면 좋겠어.

나랑 모든 것을 공유했으면 좋겠어.

집에 가서 형제들이랑 놀지 말고 나랑 더 오래 놀이터에 있어주면 좋겠어.

그래서, 방학이 싫었다.



친구들이랑 같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상, 함께할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나는 방학이면 집에 혼자만 있는데, 친구들은 형제들도 있고 동네 친구들도 많고, 방학이 즐거워 보였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서울에 계셔서 시골이 없는데, 방학마다 시골이라는 데를 다녀오는 애들이 부러웠다.

그냥,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혼자 치다가 레슨을 받고 돌아오거나 문방구에서 조용히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다가 집에 돌아왔다.

놀고 싶으니까 놀이터에 나가서 처음 보는 친구들을 사귀어 종일 노는 일은 ,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달리기도 잘 못하고, 운동은 싫어하는 아이였다.


운 좋게(?) 친구들이 껴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도 하는 날엔, 나는 하루 종일 술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애들을 따라가서 잡질 못하니까.

술래잡기도 술래가 될까 너무 공포스러워하고 싶지 않았다.

긴장되는 상황, 불안함, 이런 것들에 많이 취약했던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낯을 가리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지내기가 쉽지 않지만, 어느새 사회화되어서인지 제법 아무렇지 않은 척 잘 해내고 있다.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다.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도 생기고. 무엇보다 어릴 때처럼 사람을 사귀는 일이 두렵거나 불안한 요소가 아니다. 낯가리는 시간 동안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할 뿐.



혼자 있는 시간을 유독 즐기는 성향은 여전한 것 같다.

가만히 집에서 혼자 책 보고, 글 쓰고, 예능보고, 멍 때리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노력해서 바꾸어낸 나를 당연한 나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지내왔던 것 같다.

나는 ‘인싸’야. 친구도 많고 나가서 노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

물론 그것도 나이고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기질도 나이지만, 요새 들어 나조차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남들이 해준 말대로 보이는 나를 받아들이고 ‘아 나는 그런가 보다’

라고 대충 넘겨짚어버렸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꽤 있다.

내가 아는 내가 정말 내가 맞나?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

그래서, 매일의 일상 조각에서 진짜 나다운 모습을 하나씩 채집해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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