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랩 Jun 27. 2023

승무원 준비생의 특기

그것도 특기라 부를 수 있는 건가요??

대학교 3학년 무렵, 학교에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승무원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다.

벌써 3학년이고 4학년 초부터는 1년의 휴학을 메우기 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해보자! 하는 맘으로 지원했다.



매주 함께 모여 서울에 있는 승무원 양성 학원에 가기도 하고, 승무원 출신의 강사님이 매주 와서 강의도 해주셨다.

그 무리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나면 왠지 난 벌써 승무원이 된 것만 같고,

지금까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이자 대명사인 ‘승무원 준비생’ 신분이 된 기분이었다.(굳이, 취업 준비생이라는 단어 대신 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 같이 일렬로 서서 구두를 신고 공수자세를 하고 “안녕하십니까?”를 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니 학원에서 이걸 돈을 받고 가르쳐?” 싶은 수업도,

승무원 머리하기 수업도 (그 시절엔 유튜브가 없었으니까) 공짜라서라기보다 꿈에 부풀게하는 자극제로서 만족스러웠다.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취업준비를 명목으로 할당된 지원비가 남았다며 우리끼리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당시로선 꽤 큰돈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무상 제공의 많은 지원 프로그램이 그렇듯 초반의 열기와 다르게 마지막 수업에 남은 인원은 고작 네 명뿐이었으므로 인 당 할당되는 돈이 꽤 컸다.

학교 앞 참치김치 덮밥이 3000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우린 가난한 ‘승무원 준비생’ 신분으로 ‘아웃백’을 가기로 했다.

역에서도 한참 먼 외딴곳에 있어서 학교에서 지하철까지 타고 아웃백을 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도 안 친한 그 사람들과 그 멀리까지 가다니, 나도… 아웃백이 많이 욕심났나 보다.


예산 안에서 넉넉히 맛있는 걸 시켜서 수다를 떨면서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지만, 주문한 음료가 계속 나오지 않았다.

둘러보아도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 중 우리 음료를 기억하고 가져다 줄 생각이 있는 분은 없어 보였다.



서로 눈치만 보면서

“아 까먹은 것 같아요. 다시 시킬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요? 바빠 보이는데?”

라며 어느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카리스마 넘쳤던 수업 반장 언니가 나섰다.



“아니, 내가 말할게. 나 이런 거 진짜 잘해. 잘 봐.”


그 언니를 제외한 모두는 뭘 잘한다는 건지, 뭘 하려는 건지 파악이 안 된 채로

멍하니 있었다.


우리한테 싱긋거리면서 웃으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던 언니는 직원 한 명을 부르더니

냅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기요!!!!! 지금 음료 시킨 게 언젠데 아직 아무것도 안 주시는 거예요?

도대체 얼마를 기다렸는지 아세요?!!! 아니, 시킨 주문 하나 제대로 기억 못 해서

무슨 일을 한단 거예요!!!!”



와우.

그야말로 폭풍 샤우팅이었다.

바쁜 매장 안에 모두가 우리 테이블을 볼만큼.


그 언니는 본인이 내는 소리에 자극을 받고 점점 더 격앙되는지 뭐 여러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화를 냈고 점점 더 분노했다.


그래봤자 우린 겨우 스물둘셋의 대학생이었고, 일하시던 분들도 다 우리 또래의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학교에서 제공해 준 몇 만 원의 지원비로 우린 갑이 되었고, 그 언니는 그 대단한 특기를 부려 우리가 주문한 것 이상의 에이드를 받아냈다.

두 달 가까이 함께 들은 수업에서 배운 대로 고객을 위해 늘 최선의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그 직원이 감히 ‘서비스 정신’에 어긋나게 손님의 주문을 깜빡하다니,

너는 내가 ‘승무원 준비생’의 이름으로 용서해 줄 수가 없다.

정도의 기세였다.

‘감히 ‘승무원 준비생’ 앞에서 서비스 실수를 해…..???’



내 관점에서는 ‘승무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 이해하고 좋게 넘어갈 법도 한데,

정말로 곧 승무원이 될 계획이라면 당신도 곧 저 직원의 입장이 될 텐데…


마지막 뒤풀이에 그런 무시무시한 컴플레인을 한다는 게 나로선 너무 충격적이었다.

손 한가득,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에이드를 가져온 직원은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를 하고는 돌아갔다.

그 순간에도 그 언니는 팔 짝을 괸 채 시선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됐어요.”

라는 태도를 보이고서는 종업원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키득거리면서 신이 났다.


“봤지? 나 진짜 잘하지?”

“얼른 마셔. 남기면 쪽팔리잖아.”


남기면 쪽팔린 게 맞나. 화낸 게 쪽팔린 게 아니고?

아니 일단, 진짜 잘한 건 맞나?


그 직원과 눈이라도 다시 마주칠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배부른 배에 에이드를 집어넣었다. 빨대로 쪽쪽 빨면서.

언니가 잘! 해준 덕분에, 난 좀 겁이 났으니까…. 한껏 쫄았으니까, 시킨 대로 그냥 열심히 마셨다.


그날이 다행스럽게도 모임의 마지막 뒤풀이 자리었기 때문에 나는 그 뒤로 그 언니와 마주칠 일은 없었는데,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황과 목소리가 꽤 선명하게 남아있다.

프로그램 내내 공지를 하고, 통솔하던 반장 언니의 리더십이 그렇게 표현되어서 많이 당황스러웠고, 그분이 결국엔 승무원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승무원이 되었어도 안되었어도 나는 상관없지만, 부디 그분이 그 엄청난 특기를 발휘해서 나의 동료들을 괴롭히질 않아 주길 바라는 맘은 있다.



세상엔, 겨우 몇 만 원의 돈에도 갑이 되어 ‘특기’를 살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뭐, 지금은.

엄청 잘 알고 있다.



의외로 사람들은 컴플레인을 통해 본인의 이득을 취하려는 것보다, 반장언니처럼 ‘배우신 나’가 ‘못 배운 너’에게 서비스란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려는 태도가 더 많다.

나는 지금 무식하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내 상식에선 너의 그 태도와 서비스를 봐줄 수 없어.

내 상식대로 행동하고 내 요구대로 응해.라는 태도.


그런 태도를 취하면, 본인이 하는 행동이 ‘진상’으로 분류되지 않고 ‘가르침’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준 뒤에도 ‘싱긋’ 웃으며 의기양양해질 수 있는 걸지도.


“봤지? 이렇게 하는 거야. 말하면 다 된다니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거야.”



물론, 원하는 걸 얻어낼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가 받는 ‘덤’, ‘서비스’엔 전하는 사람의 상처와 울분이 섞여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서비스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내 실수를 알려주고 다시 가져다 달라고 말해주는 손님에겐 미안하고 죄송한 맘에 더 나서서 뭘 챙겨드리고 진심을 다한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인격을 무시하고 화를 내는 그 사람에게는

‘천벌 받아라…. 내려서 자빠져라…….’라는 저주를 속으로 퍼붓고 있을 수도 있다.


독이 가득한 서비스보다는 진심이 한가득 버무려진 진짜 서비스가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고개 박고 눈치 보며 먹는 ‘에이드’를 얻으려고, 본인 얼굴에 침을 뱉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