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명사 : 목적하는 바를 이룸.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20대 때부터 난 성공하고 싶었다.
당시 정확한 성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성공하고 싶었다.
성공이란 단어의 뜻도 몰랐다.
누군가 심어준, 아니 어디선가 들은, 세뇌된 성공의 이미지가 있었다.
멋진 차와 큰 집, 엄청 많은 돈, 마음껏 사려고 하는 것들을 사는 것,
겉모습을 열심히 꾸미는 것, 남들이 말하는 명품으로 치장하여 남들에게 보이는 것.
이런 것들을 나 역시 성공이라고 하며 갈망했다.
기초적으로 멋진 차와 집을 소유하고 싶었다.
운전기사 딸린 차를 엄마에게 제공하고 싶었다.
돈을 물 쓰듯이 쓸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었다.
그게 성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
돈도, 사람도, 집도, 차도 없었다.
어느 순간 성공! 성공! 돈! 돈! 돈! 하던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돈도 달랑 수중에 일천만 원만 남아 있었다.
사회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시점이었다.
돈을 많이 벌겠다고 떠들고 다녔던 10년이었다.
‘100억을 40대 중반까지 모을 거야’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면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녔다.
재테크 카페와 모임에 가입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방법을 배웠다.
일도 회사 일이 끝나고 또 일하러 갔다. 다른 일을 하러 다녔다.
개발 일을 하며 회사 일이 끝나고 다른 곳에 가서 개발 일을 밤새워 가며 하기도 했다.
돈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돈을 벌러 다녔다.
급히 돈을 늘리는 방법은 주식이라고 주식도 했다.
보험설계사를 자격증도 따고 투잡으로 보험 설계사 일도 했다.
네트워크 마케팅 일도 따라 다니며 성공을 외쳤다.
그렇게 몇 년간 미친 듯이 다녔다.
근데, 어느 순간 열심히 모았던 돈과 사람이 내 수중엔 하나도 없었다.
남은 건, 단돈 일 천만 원. 월세 보증금으로 가지고 있는 돈이 전부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다행히 나는 일거리가 있었다. 다행히 난 일은 할 수 있었다.
몸은 만신창이 되었으나 일을 하여 월급을 받을 수는 있었다.
월세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으나 당시 월세를 얻기 어려웠다.
월세를 얻기 위해 부동산에 연락하며 다녔다.
당시 대부분 부동산은 집 없으니 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 부동산에서 월세를 낼 수 있으면 작은 오피스텔을 사는 건 어떠냐고 했다.
월세 내는 비용이면 대출이자 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당시 나에겐 오피스텔을 구매할 비용조차 없었다.
난 계약직이었고 대출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수중엔 달랑 천만 원이 있고 매매비용이 추가로 필요했다.
대출을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은행권에서 받기는 어려웠다.
카드론과 마이너스 대출 천만 원, 지인이 빌려준 오백만 원으로 겨우 자금을 마련했다.
자금을 마련하여 오피스텔을 구매했다. 작은 보금자리가 생긴 것이다.
당시 내가 구매한 오피스텔엔 집만 있었다.
난 가전제품도 없었다. 세탁기, 냉장고조차 없었다.
다행히 계약 시점은 가을이었다. 세탁기만 무이자 12개월로 구매했다.
냉장고 없이 베란다에 음식을 두며 살았다.
월급은 매달 카드론과 이자를 내는 데 쓰였다.
한 달 치 교통비는 지하철 패스 충전.
식사는 점심과 저녁을 회사 구내식당 식권 한 달 치 구매로 생활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았다.
오직 집과 회사만 왔다 갔다.
집에 들어와서는 TV 리모컨만 켜고 시체처럼 지냈다.
그렇게 1년을 살았다.
매달 원금과 이자를 내야 했던 카드론을 해결했다.
이렇게 1년을 보내고 나서야 조금 숨통이 트였다.
1년간 몸은 엉망이었다.
일은 계속하는데 온갖 곳에서 염증이 생겼다.
위염, 식도염, 중이염까지….
매번 병원을 가면 운동하시고 스트레스를 줄이셔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운동할 시간은 없었다.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일은 매일 야근과 주말도 없이 일했다.
몸이 자주 아팠다. 하루는 휴일에 출근을 하루 못했다.
다음날 출근하였다. 상사는 나에게 무단결근을 하였다고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사실 그날은 휴일이었다. 난 혼자 살았고, 응급실에서 진통제를 맞고 하루를 보낸 상태였다.
회사에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사는 나의 사정은 들어보지도 내 상태가 어떤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연락 없이 출근 안 했으니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라고 통보했다.
난 너무 서러웠다. 아프고 서러웠다.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돈도 일도 없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지낸 기간 동안 내가 뭐를 위해 뛰었는지 모르겠다.
뭐가 성공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달렸다.
이게 올바른 방법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해야 한다는 주변의 말로 난 그냥 달렸었다.
그리고 만신창이 된 상태로 집에 누워 있으면 생각했다.
‘나 지금까지 뭐하며 산 거지?’란 의문이 들었다.
성공이란 거, 돈 버는 거, 다 내려놓았다. 아니 어쩌면 억지로 내려놓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시체처럼 살았다. 머릿속에 생각을 없애고 그냥 살았다.
성공해야 한다고 할 때는 계획 속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모든 것을 통제하며 나 스스로 쪼이고 살았다.
내가 나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특히, 나 자신에게만 너그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에게도 너그럽지 않았다.
내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의 잣대를 가져다 평가했다.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하며.
누구도 다른 사람 인생을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인데 그 당시는 그걸 몰랐다.
내 맘대로 평가하고 판단하였다. 그러면서 내 잣대로 재었을 때 모자란다고 한 사람은 무시하기도 했다.
오만함의 극치였다.
이 오만과 자만으로 가득 찬 나를 다시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닌데…. 그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다니.
그러면서 그들에게 충고하고 화를 내다니…….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친구도 없고 내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쉽게 나를 버리는 사람들뿐이라고.
최소 일 년을 그렇게 모든 연락을 끊고 지낸 거 같다.
내가 챙기던 사람들보다 내가 챙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잘 지내?’라고 문자가 왔다.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가 ‘무소식이 희소식이지?’라며 문자를 보냈다.
‘잘 있는 거지?’라며. 몇 년 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응, 잘 있어. 그냥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고 있어.’
‘그래. 궁금해서 이렇게 문자와 전화만 한다. 나도 바쁘다고 얼굴 보기 힘드네. 건강 잘 챙기며 지내.’
그 친구 연락의 고마움이 잊히지 않는다.
나의 상황을 제대로 아는 이들은 없었다.
보증 없이 나에게 500만 원을 빌려준 내 친구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의 상태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끊기는 게 대부분이였던 내 인간관계였다.
연락하지 않으며 많은 이들과의 관계가 끊기고 없어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때 내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하나둘 연락이 왔다.
내게 현재 남아 있는 오래된 이들은 이후 연락하며 지내는 이들이다.
이들과의 관계는 10년 이상이 되었다.
내가 챙기지 못한 이들인데 그들이 내 곁에 남아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이들이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나는 시간이 흐르며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삶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성공이란 의미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면 성공이란 이미지는 그 당시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심어진 것이고 누군가 이야기 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 성공을 생각한다.
내게 성공은 나의 행복이라는 사실.
나의 행복은 내가 만족하는 삶이란 사실.
내가 만족하는 삶이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이 있고 내가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이 자체가 만족하는 삶이었다.
나는 성공의 의미를 이제는 안다.
단지, 국어사전에 나오는 간단한 의미 : 목적하는 바를 이룸.
내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는 게 먼저였다.
지금은 안다. 내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이루고자 할 때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사실도.
지난 몇 년간 난 성공했다.
첫 번째 성공을 했다.
내가 목적하는바 : 행복한 삶.
진정 내가 행복이라고 느끼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삶을 살았다.
지금도 살고 있다. 많은 돈과 멋진 차, 으리으리한 집은 없다.
대신 마음이 편안하고 언제든지 웃을 수 있는 내가 있다.
편하게 전화하는 친구들이 있다. 시간을 쪼개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몇 달 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진 사이처럼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들이다.
어떤 이야기든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
이런 관계와 내 몸을 쉴 수 있는 집이 있다. 내 발이 되어 주는 차가 있다.
비록 남들이 볼 때는 초라한 집과 차지만 난 행복하다. 그래서 난 성공했다.
내가 목적하는 바를 이루었다.
또 나는 다른 성공을 바라고 있다.
함께 나누는 삶. 그 삶을 위해 또 나는 움직이고 있다.
성공이란 의미를 이젠 나는 알고 움직인다.
내겐 성공이 이런 목적하는 바를 알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