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로 다시 정의하기
다시 정의하기 – 모든 의미를 내가 다시 정의한다.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사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살아가는 것들에서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도 떠오른다.
단어 하나하나의 정의를 다시 하게 된다.
친하다는 기준도 갑자기 의문이 든다. --- 친하다는 뜻???
친하다는 뜻이 뭘까?
가까이 사귄다는 의미는 또 뭘까?
정이 두텁다는 의미는 뭘까? 하나하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 선조가 예전에 배운 방식이 떠오른다.
서당에서 ‘하늘 천까지’부터 배운다.
훈장 선생님께서 ‘네가 생각하는 하늘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
배우는 학생들은 ‘제가 생각하는 하늘은 눈에 보이는 하늘입니다.’라고 답한다.
다시 훈장 선생님께서 ‘너의 눈에 보이는 하늘이 어떠냐?’고 물으신다.
학생은 ‘파랗고 맑습니다.’라고 답한다.
‘하늘 천(天)’ 이 글자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도 우리 선조는 몇 번을 생각하고 문답을 하셨다.
근데 지금의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배우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난 더욱 이렇게 배우지 못했다.
‘그냥 외워’라고 배웠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외워’라고.
어찌 보면 이렇게 외워서 배웠기에 그 의미를 하나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친하다’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친한 사람들은 누구지? 친하다는 의미는 무엇이지? 그냥 자주 보면 친한 것인가? 서로 생각을 나누면 친한 것인가?’ 계속 질문이 던져진다.
이 단어의 의미조차 난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린 서로 친하잖아’라고 말한다.
‘친하다’라는 단어와 ‘사람을 안다’라는 문장에 대해서 숙고하게 된다.
‘사람을 안다.’ ‘내가 누군가를 안다.’ ‘난 그 사람을 알아. 난 그 사람과 친해’
우리는 이렇게 많이 이야기한다.
근데 정말 ‘사람을 안다’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누군가에 관한 판단을 계속하는 걸 우린 안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
‘그는 키가 커, 그는 말이 많아, 그는 얼굴이 동그래, 그는 말랐어, 그는 친하지 않으면 말을 안 해’ 등등 누군가에 대해서 안다면서 우리는 이런 표현을 쓴다.
그러면서 또 판단도 한다. ‘그는 성격이 급해, 그는 소심해, 그는 경솔해’ 등등
이러면서 우린 그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판단하는 그 판단은 정말 맞는 걸까?
내가 잠시 본 그 시점으로 그를 판단했는데 그게 그를 아는 걸까? 그가 항상 그럴까?
주위환경, 사람의 생각, 외형 이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의 주위환경이 변했을 때 그가 변할 수 있다.
이럴 땐 사람들은 또 이런 표현을 쓴다. ‘그는 변했어. 내가 아는 그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본 그에 대한 관점이 변한 것일 수도 있고 그가 속한 환경에 변화에 따라 그가 다른 행동을 보였을 뿐일 수도 있다.
근데 우리는 이렇게 계속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 내리고 있다.
아니 그런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난 오늘도 그 누군가와 친하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그와 친하다고 선택을 한 것이다.
내가 친하다고 선택한 만큼 그는 나를 친하다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의 오판일 수 있는 것이다.
친하다는 의미를 다시 정의하면서 난 누군가와 친하다고 말하면서 내가 그와 친하다고 선택했다는 부분을 깨닫게 된다.
친하다는 의미는 아직도 정의 내리지 못했다.
그냥 나 스스로 그와 친하다고 선택했다는 사실뿐이다.
오늘부터 난 나의 언어로 다시 정의 내리기로 한다.
단어와 문장들을 의미들을.....
근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