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이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그녀는 쫑이를 보냈다.
그녀는 쫑이가 그래도 가장 편히 간 거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인사를 못 해서 슬프다고 했다.
쫑이를 이야기하며 그녀는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는 쫑이였다.
주인인 그녀가 가장 좋아한 줄 알았기에 쫑이 서열이 어떤 강아지보다 우위였던 거 같다.
쫑이를 내가 보내지 못했다.
일이 있어 순천에 내려갔을 때 쫑이가 떠났다.
쫑이와 토토, 지니아를 강아지 호텔에 맡겼다.
민이는 당뇨가 있어서 사실 한동안 호텔 등에 맡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민이가 있었기에 아이들을 떼어놓고 어딜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민이를 보내고 처음 아이들을 맡겼다.
아이들을 맡겼던 곳은 강아지 놀이터 겸 유치원이었다. 케이지에 가두어 돌보는 곳이 아니었기에 나도 걱정 없이 맡겼다.
내 아이들이 늙은 개였기에 좀 걱정은 했다. 맡아 줄지를.
사실, 12살이 넘는 아이들은 병원이 아닌 이상 호텔에서는 잘 맡아 주지 않는 편이다.
다행히, 우리가 맡긴 곳은 노견이어도 맡아 주기로 했다.
민이가 떠나고 나서 아이들을 하루 맡겨서 경험했던 곳이다. 그래서 순천 일이 생겼을 때 걱정 없이 맡기고 일을 보러 갔다.
일정은 금요일에 출발해서 일요일에 돌아오기로 했다.
일을 보고 있는데 토요일 오후에 연락이 왔다.
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나는 당시 강의를 하고 있었고 모임을 진행 중이었다. 남편이 연락을 먼저 받았다.
모임이 끝나고 나왔을 때 남편이 말해 주었다.
순천에 갔을 때는 한여름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독 더웠다.
쫑이를 돌봐주던 유치원은 평상시처럼 오전에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함께 풀어 주었다고 했다. 쫑이가 좀 힘들어하길래 실내에서 쉬게 넣어 주었다고 했다.
점심 이후 간식을 주러 갔더니 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있었다고 했다.
쫑이를 어떻게 할지 연락이 온 것이다. 우선 화장장으로 보내 냉동 보관시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바로 올라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 일정이 남아 있었고 일요일에나 움직일 수 있었다.
난 전화통화를 끝내고 차 안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 부랴부랴 정리하고 우선 아이들이 있는 강아지 유치원으로 갔다. 유치원 책임자가 나왔다.
‘저희도 처음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당황했습니다.’라고 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유치원이었고, 노견을 받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이곳에선 노견은 돌보거나 맡지 않는다고 했다.
암튼, 아이들을 데리고 물건을 정리해서 집으로 갔다. 집에 나머지 애들을 내려놓고 화장장으로 갔다.
쫑이를 보러 갔다.
쫑이는 내가 올 때까지 냉동보관 되어 있었다.
차디찬 쫑이의 몸을 만지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민이를 보낸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쫑이까지 간 것이다. 몇 개월 차이로 두 아이를 보냈다.
쫑이는 피곤했는지 엎드려 편안히 잠든 모습으로 떠났다.
쫑이에게 미안했다. 가는 모습을 못 봐서 미안했다.
아마도 쫑이는 너무 더운데 바깥 활동을 해서 힘들었나 보다. 힘들어서 쉬면서 간 거 같았다.
쫑이는 엎드려서 ‘나 너무 피곤하다. 주인은 어디 있을까? 그녀가 보고 싶다. 이제 좀 자야겠다’라고 생각한 거 같다. 쫑이의 모습은 정말 피곤해서 잠든 모습이었다.
여름에 꽤 더웠는데, 그래서 쫑이가 좀 힘들었던 거 같았다.
찬 쫑이를 만지며 보내야 한다고 했다. 쫑이 화장이 끝날 때까지 난 울면서 기다렸다.
마지막 가는 길에 옆에 없었기에 정말 미안했다.
내가 노견인 아이들을 맡기고 일을 간 게 미안했다.
초보 강아지 키우는 사람으로 발톱을 아프게 했던 기억이 난다.
쫑이는 내가 발톱을 깎으려고 하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누가 들으면 강아지를 잡는 줄 알 정도로 소리를 냈다.
결국, 난 쫑이 발톱을 한동안 깎아주지 못했다. 내가 깎으려고 발톱 깎기를 들고 안으면 ‘캥~캥~캥’하며 죽는소리를 냈다. 내가 발톱을 깎으려고 할 때마다 난리를 쳤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선생님이 깎으면 군소리 없이 1분도 안 돼서 다 깎았다. 내가 옆에 있거나 내가 깎으려고 하면 쫑이는 엄청 엄살을 피웠다.
그렇게 여우 짓을 하던 쫑이였다. 쫑이는 사람을 무척 좋아했고, 자신이 귀여움을 받는 행동을 할 줄 알았다.
새끼를 낳고 잘 돌보고 키웠던 쫑이었다.
내 곁에서 16년을 함께 했던 쫑이었다.
더운 여름 바깥 활동으로 지쳐서 쫑이가 그만 떠나 버렸다.
내가 옆에서 지켜주지도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난 내내 울다가 쫑이를 받아왔다.
쫑이를 생각하며 또 화분을 준비해서 곁에 두었다.
처음 키우던 2마리의 강아지는 한해에 같이 떠나 버렸다.
민이는 항상 준비했다.
몇 년간 내 곁에서 나에게 이별의 준비를 시켰었다. 근데, 쫑이는 아니었다.
튼튼했다. 물론, 민이보다 쫑이가 더 수술을 많이 했다. 슬개골 탈구도 민이보다 쫑이가 먼저 수술했다. 눈에 문제가 생겨서 제거 수술도 했다
새끼를 낳고 난 후에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도 했다.
예방 접종 후 특정 약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얼굴이 퉁퉁 붓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쫑이는 특별히 건강에 문제는 없었다.
백내장도 민이처럼 심하지 않았다. 냄새도 잘 맡았다. 단지, 이빨이 좀 부실했다.
그래도 잇몸으로 이것저것 잘 먹었던 쫑이다.
그런 쫑이도 갔다. 무지개다리를 그렇게 훌쩍 혼자 건너 버렸다.
준비하지 못했기에 쫑이의 떠남은 내겐 정말 힘들었다.
쫑이를 보내며 화장터에 있으면서 나는 오열하며 쫑이를 보냈다.
내 곁엔 자신의 딸 ‘지니아’를 혼자 두고 갔다.
쫑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던 나였다. 근데 남은 2마리의 노견이 있었기에 난 또 움직여야 했다. 살아야 했다.
쫑이가 떠나자 사람들이 물었다.
‘강아지 또 키울 거예요? 보내는 건 너무 슬프죠? 다신 못 키우겠죠?’라고.
아직 아이들이 남아 있다. 보내는 건 슬퍼도 그 애들이 내 곁에 있었을 때 주었던 즐거움이 너무 컸다.
다시 또 키우냐는 이젠 나의 나이로 부담이 된다.
내가 다시 받아들인 아이들을 내가 보내지 못하고 내가 먼저 갈까 봐. 그게 난 부담이 되어 이젠 강아지를 안 키우려고 한다.
남은 아이들이 내 곁을 다 떠나면 난 다시 강아지를 안 키울 거다.
하지만, 보내더라도 그들이 나에게 주었던 행복과 즐거움은 잊을 수 없다.
쫑이가 내게 주었던 따스한 온기와 체온은 잊히지 않는다.
웃으며 내게 항상 달려왔던 쫑이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너무 사랑했던 쫑이를 그렇게 보냈다.
그녀는 쫑이의 이야기를 하며 펑펑 울었다.
그녀가 정말 끔찍이 사랑하던 쫑이가 그렇게 가서 너무 가슴이 아팠던 거 같다.
이야기를 듣는 나 역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그란 눈망울로 쳐다보던 쫑이가 생각났다.
강아지들과 함께 했던 일을 추억하며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도 토토의 이야기로 마지막 한편 남았습니다.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글을 쓴다는 건 제 자신을 알아가고 내면을 들여다 보는 좋은 경험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그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