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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곰 Dec 03. 2021

아이가 등원하면 나는 글을 쓴다.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아이가 등원 차량에 올라타는 순간


'드디어 해방이다.' 4년 동안 매일 하는 데도 절대 질리는 법이 없다. 간혹 혼잣말로 내뱉었는데 옆에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꼬리가 쓱 올라가게 하는 달콤한 말이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네가 친구들과 놀 시간 동안 엄마도 나 자신과 좀 놀아야겠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등원 차량이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결혼 전에는 글 쓰는 일을 했다. 내가 좋아하고 그나마 잘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도 즐겁게 일했다. 글을 쓰기까지 시동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일단 쓰고 나면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타입이라 글 쓰는 시간을 좋아했다. 애초에 글을 써서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가 없었기 때문에 글쓰는 시간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육아를 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그 일들을 겪어내느라 나는 점점 쓰는 법을 잊어갔다. 육아는 그야말로 노동이었고, 성취감은 왠지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육아를 하는 마음은 극과 극을 달렸다. 어느 순간 내 안에서 균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솟구쳤다. 한때 데리고 살았던 '노동의 자아'는 네가 좋아하는 일부터 시작하라며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했다. 


낮에 하는 키친 테이블 노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기 데뷔 전 재즈바 영업을 마치고 새벽마다 식탁에서 글을 썼다. 일명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 불리는 이 행위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식탁에서의 글쓰기는 내게도 적용되어 일단 식탁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연습부터 했다. 어떤 날은 일기를 쓰기도 하고 개인 블로그에 에세이나 서평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어 긴 호흡으로 쓰는 글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스텝 바이 스텝으로 글을 쓰는 근육을 서서히 늘려나간 셈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고, 아픈 기억을 쓰다 그 자리에서 멍하니 몇 시간을 흘려보낸 적도 있었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면 금세 포기했을 일이다. 대신 나는 무엇을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어올 때 글쓰기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할 수 있다면, '잘'을 빼고 '하는' 것에 의미를 두면서 키친 테이블 노블을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지속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일을 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고 자아를 함께 키워 나가는 엄마들이 있는 반면, 나처럼 체력과 마음이 바쳐주지 못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등원하고 나서 단 한 시간만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그것이 청소든, 드라마 시청이든, 산책이든 상관없다. 잘 찾아보면 우리 마음에는 사소하지만 단 몇 분이라도 자신을 흐뭇하게 만드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힘든 순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무언가,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작은 희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아이를 태운 등원 차량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세차게 흔든다. 그리고 또다시 '해방이다'를 외치며 어제와 다름없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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