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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Dec 13. 2022

나의 첫 에세이 수업

끈기 없는 사람의 끈기 생성 프로젝트 





눈보라가 한차례 휘몰아치고 난 뒤, 다시 해가 얼굴을 드러냈다. 눈 구경이 귀했던 남쪽에서 자라서인지 이렇게 눈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서쪽의 겨울 날씨는 올해도 낯설다. '서쪽 살이 10년 차인데 겨울만 되면 여전히 이방인 같다는 기분이 드는 건 뭘까' 중얼거리며 컵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 식탁에 앉으니 창밖엔 어느새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끈기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래서 뭔가를 시작해 도중에 포기해도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니까'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합리화시켰다. 미친 듯이 강렬하게 원하는 게 아닌 이상 중간에 포기할 핑계를 끌어다가 보따리를 만드는 데 선수다. 하지만 올여름이 지나면서부터 불현듯 이렇게만은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실패해도 좋으니 도전해서 끝까지 마무리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뜨겁게 올라옴과 동시에, 앞으로의 진짜 실패는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니까'라며 도전도 안 해보고 핑계 보따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던 게 시작이었다. 


지난 9월 중순의 어느 저녁,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아파트로 산책을 하러 나갔다. 팔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서늘한 날씨였다. '이대로 가을 겨울을 보내고 나면 또 한 살을 먹겠지' 하는 마음이 들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다 복지관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게 보였는데, 내가 사는 지역의 평생학습관에서 재능기부 강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전부터 그동안 내가 공부한 것을 정리하고 아웃풋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나는 '실패해도 도전하고 마무리 지어 보자. 이번만큼은 너의 끈기를 잘 붙들어서 30대를 멋지게 정리해봐'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나는 계속 주저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이력서와 글쓰기 강의 계획서를 준비하는 데 일주일을 보냈다. 남편은 내가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하니 내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다. 남편의 그런 눈치는 언제나 고마워서 나는 센터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다행히 재능기부 강사에 선정이 됐다는 전화를 받았고, 남편은 '사실 너의 재능은 돈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아이 낳고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거니 경험 쌓는다 생각하라'라며 덤덤한 축하를 건넸다. 나는 그런 남편의 덤덤함이 좋았다. 사실 남편은 내가 글을 쓸 때 제일 멋있다고 말하던 사람이기에 어쩌면 나보다 더 좋아했을 거란 추측을 해보며.     


나는 전화를 받은 다음 날부터 한 달 뒤에 있을 강의를 준비하느라 그야말로 10월은 육아 노동과 견줄만한 시간을 보냈다. 생에 처음 해보는 PPT를 유튜브로 독학하고, 5주 차의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수업 자료를 모으고 원고를 작성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지난 10월을 생각하면 살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식탁에서, 내 책상에서, 단골 커피숍에서 노트북으로 수업 준비를 하던 모습만 떠오른다. 내가 준비한 강의는 글쓰기 기초 과정이자 마지막 회차 때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 대학 때 들었던 글쓰기 수업과 라디오 작가로 일하면서 배웠던 경험이 강의를 준비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다. 그저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강의 자료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만약 내가 수강생이라면 어떤 강의를 듣고 싶을까?'란 생각을 하며 원고를 작성했다. 홀로 독박 육아를 하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시간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던 한 달이었다.      


새로 산 니트와 롱치마,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강의실을 향해 걸어갔다. 어떤 사람들이 내 수업에 와 줄까, 10명으로 인원을 정하긴 했는데 10명이 다 오긴 하는 걸까. 노심초사, 반신반의하며 나는 그렇게 11월의 첫날을 열었다. '끈기 없는 사람의 끈기 생성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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