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우연히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20년 후의 모습을 그린 <저스트 라이크 댓>이 OTT에 올라왔다는 글을 읽었다. 서른다섯의 친구들이 이제는 50대가 된 모습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그때만큼 서로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우정이 아닌,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좋아 보였다. 나는 <저스트 라이크 댓>을 다 보고 난 뒤, 문득 대학생 때 한참 다운받아 보곤 했던 <섹스 앤 더 시티>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주인공 캐리가 창가 책상에 앉아 칼럼을 쓰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던 드라마, 나도 '저 사이즈의 창문과 저 질감의 책상만 있다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라고 하면 누구나 그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까.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도 흥미롭고 사랑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일과 자아를 놓치지 않았던 캐리의 대담함이 부러웠던 작품이다.
그래서 내 삶을 잘 꾸려나가는 와중에도 가끔씩 그들이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섬광처럼 번쩍 나타나곤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시원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캐리, 보수적이지만 사랑을 종교처럼 믿고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는 살럿, 하버드 법대 출신 변호사지만 늘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미란다, 이 시대에 태어났어야 마땅하지만 그 시대에도 넘쳐흐르게 당당했던 사만다, 하지만 긴밀한 관계를 맺을 줄 몰라 어딘가 안쓰러웠던 그녀. 그녀들이 사랑과 일에 대해 고민하던 나이를 어느덧 나도 지나가고 있어서였을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20대에는 와닿지 않던 대사와 표정을 이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들이 겪었던 일을 나도 겪기도 했고,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각자의 선택들을 나도 삶의 중간중간에 만나기도 해서인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사랑'을 중심으로 봤다면 지금은 그녀들이 겪는 '삶'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내가 만약 캐리였다면, 샬럿이었다면, 미란다였다면, 사만다였다면, 삶의 곳곳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과연 나는 지금껏 형성되어 온 가치관과 성향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마도 앞으로의 인생이 이젠 '크고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이라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 그녀들처럼 50대가 되겠지. 그때가 되면 내가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내 삶의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