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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곰 Jun 16. 2023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지혜로운 여자보다 차라리 미친년이 되기를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지난 두 달 동안 도서관에서 비대면으로 에세이 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첫 온라인 수업이라 실수도 많았지만 

글을 써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었기에 

매회 긴장과 설렘을 함께 안고 수업을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상반기 독서프로그램 강사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무작정 강사 지원서를 넣었던 그날의 늦은 밤을 기억한다. 

작년에는 재능기부로 5회 차의 수업을 했지만 

이번에는 돈을 받고 10회 차의 수업을 해야 한다. 

돈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내가 그 분야의 프로로 입성한다는 의미고, 

정규 10회 차를 해야한다는 것은 수업의 목표와 결과물이 뚜렷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다시 내 능력을 의심하는 문장이 고개를 쳐들었다. 

대학 때의 전공과 결혼 전 라디오 작가로 일했던 경험이 

글쓰기 강사라는 분야에 뛰어들 만큼 탄탄한 것일까. 

갑자기 내가 가진 지식이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이미 담당자에게 보내진 메일을 멍하니 쳐다보며   

나는 발송 취소 버튼을 누를 것인지

아니면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해 나갈 것인지 고민했다.

그때 어디선가 읽었던 튀르키예 속담이 생각났다. 


'지혜로운 여자가 강 건너는 방법을 찾을 무렵, 미친년은 이미 강 건너에 가 있다.' 


나는 사실 지혜로운 여자가 되려 애쓰기 보다 

이미 강을 건너고 있는 미친년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확인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_ <스튜디오를 떠나며> 





나는 그날 이후 양말도 벗지 않은 채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나를 의심하고 자기검열이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내게 허락된 10강을 이끌어갔다. 


온몸이 강물에 홀딱 젖어 겨우겨우 땅에 다다랐을 무렵 

나의 미친년은 그제서야 깔깔대며 웃었다. 

생각한 만큼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보람됐고, 생각 외로 내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는 걸.

수강생들에게 '다음 수업이 개설되면 꼭 연락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꽤 오랜만에 사회인으로서 인정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젠 그곳이 어디든 성큼성큼 걷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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