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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곰 Jul 17. 2024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니까





최근 아주 오랜만에 질투와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사실 이 감정이 질투인지 부러움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간 잔잔하게 가꿔나가던 내 일상에 작은 돌 하나가 툭, 떨어졌다. 그 후로 며칠간 나의 하루는 그 작은 돌 하나를 바라보는 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휙 돌아보고,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휙, 가을에 시작할 수업 준비를 하면서도 휙. 마음속 현관 앞에 던져진 그 돌은 어느새 내가 돌아보는 시선마다 닿아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질투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배웠다. 살면서 그런 감정을 여러 번 느끼기도 했고 나는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는가 자책했던 경험도 있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 가정에 신경 쓰느라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 아무 사고 없이 잘 지나가기만을 바랐고, 아이가 삼시 세끼 잘 먹고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다친 곳 없이 집에 오면 그만이었던 시간이었다. 남편도 내가 미처 신경 써 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디 본인이라도 챙기길 당부하며 그렇게 가정의 울타리에서 30대를 보냈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내게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결혼 전에 했던 일은 아니지만 아이의 등하교를 모두 챙겨주면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 찾은 일이었다. 하다 보니 우려했던 것보다 적성에 맞았고 아이를 집에 혼자 두는 일 없이 온전히 돌볼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다. 이 일을 하면서 40대를 보내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20대 때가 떠올랐다. 나와 함께 공부했던 대학 동기들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어느 날 간간히 기사로 소식을 접한 A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학생 수가 많지 않은 학교 특성상 전공은 달랐지만 교양 수업을 함께 들으며 대학 시절 내내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친구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내 앞에서 한 번도 잘난 체를 하거나 서울 사람이라고 으스댄 적도 없었다. 늘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면서도 수더분하게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A와 나는 선배의 부탁으로 음향보조 스태프로 일을 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눈인사만 나누고 동기들과 함께 밥을 먹었을 뿐 그저 '동기'라고 소개할만한 친분이었다. 그러다 꼬박 보름이란 기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음향을 만지는 작업을 해야 해서 내향적인 나로서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격 좋은 A는 스스럼없이 다가왔고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우리는 선배의 큐 사인을 받을 때마다 서로의 놓치는 부분이 없는 확인 해가며 선선한 우정을 쌓아갔다. 


그 공연 이후로 우리는 A는 본가에서 나는 자취방에서 MSN 채팅창으로 누구의 과제가 더 힘든지 토로하며 새벽을 지새우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스무 살의 방황을 함께 겪으며 불친절한 청춘의 시간을 견뎌내는 사이가 되어갔다. 손바닥이 딱 붙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내게 있어 A는 '저 친구는 참 좋은 사람이다'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의 우정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의 선선한 우정이었기에 지금 떠올려도 바로 미소가 지어질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결혼한 후에 A와 소식을 주고받은 적은 없다. 이 마저도 자연스러웠기에 가끔씩 인터넷으로 보는 친구의 행보에 혼자 조용히 응원을 할 뿐이었다. 


A는 나와 달리 전공을 살려 계속 공연 연출을 하고 있었다. 워낙 심성이 착하고 인성이 좋았기에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연출가로 성공한 듯 보였다. 그리고 지방의 한 예술대학에 교수로 임용돼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내 마음에 부러움이 진하게 올라왔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나의 삶을 객관화시켜 보는 기회가 되었다. A는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결국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반면 나는 A와 마찬가지로 힘든 순간을 겪으면서 좋아하는 일을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가정을 지키는 데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경력을 리셋하는 중이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중일 거야 



그 며칠 동안 질투인지 부러움인지도 모를 감정에 사로잡혀 무탈한 내 일상이 흔들렸다. 어젯밤 남편에게 이런 내 감정을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이성적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가 잘되는 건 축하할 일이지만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경우엔 그런 소식을 모르고 사는 게 낫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니까."   

   

마흔 이후에는 정말이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느라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20대 때는 학벌, 외모, 직장이 그 사람을 말해줬다면, 30대 때는(우리 세대의 경우) 결혼하고 육아하느라 외관은 다를지언정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사는 모습은 비슷비슷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다양한 일들과 변수들이 유일한 공감대가 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마흔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이도 어느 정도 크고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예상되는 일들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생긴다. 이때부터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인해 사람들도 갈리고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도 달라진다.  


A의 길과 나의 길은 확연히 다르다. 그러니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좋아했던 친구가 성공해서 기쁘다.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스무 살 시절에 그런 친구와 함께 대학을 다니고 공부했다는 시간이 내게는 참 소중하다. 그 친구가 일로 인정받기까지 노력했던 시간에 나는 한 생명을 책임지며 키워왔다. 서로 각자의 시간에 최선을 다한 결과일 뿐, 너의 삶도 꽤 괜찮다. A의 작품을 보러 서울에 한 번 다녀오자. 보고 싶다. 선하고 예뻤던 A의 얼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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