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방학이 있었으면 해서_1화

좋았던 일을 더 많이 기억하기

by 에스텔라




며칠 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월별 기록을 하다가 문득 '베스트와 워스트를 뽑아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 책상에 앉아 수첩을 펴고 글씨가 잘 써지는 펜을 골라 기억을 의지해 하나씩 써 내려갔다. 좋았던 일, 잘했던 일, 아직도 후회되는 일, 힘들었던 일 등, 생각나는 대로 적었더니 워스트보다 베스트가 훨씬 많았다. 출산 후 기억력 감퇴로 인한 일상의 부작용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가 싶어서 웃음이 났다. 그래서 12월의 글은 올해 나를 설레게 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일들과 아직도 후회되는 일들에게 대해 써보려 한다.



1. 코로나 후, 4년 만의 여행


출산을 하고 독박육아를 하면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어 극단의 조치로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다. 국내 여행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언제든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꼭 비행기를 타야 했고, 그렇다고 네다섯 시간 비행기를 탈 체력도 못돼 한국에서 가장 가깝고 항공편이 많은 일본을 여행지로 택했다. 2박 3일의 여정에서 많게는 4박 5일까지, 여행을 할 동안 부녀가 먹을 음식을 다 만들어놓고 화장실 청소와 분리수거까지 한 다음, 캐리어를 끌고 1년에 한 번씩 일본으로 떠났다. 후쿠오카, 유후인, 교토, 삿포로, 아오모리 등을 여행하며 엄마로서의 나를 지우고 최대한 이기적인 나의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그랜드마 모지스_눈이 온 아침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고 동시에 나의 여행도 잠시 멈췄다. 사실 그 직전의 교토여행에서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한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회복돼가고 있었다. 만약 내년에 다시 떠나게 된다면 국내를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코로나는 장기화 됐고 두 번의 코로나 확정으로 기관지가 확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여행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마스크만 벗을 수 있다면, 기침이 잦아들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정부의 엔데믹 선언 후 우리 가족은 각자 일상을 회복해 갔지만, 그 사이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만 바라보던 시간에 안주하다 일을 하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생기는 불편한 에너지를 과감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4년 동안 잠자고 있던 여행 본능이 기어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놓자 겨울방학에 어디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되도록이면 겨울에도 따뜻한 곳, 자연이 아름답고 먹거리가 풍부한 곳, 이 두 가지 조건에 맞는 곳은 부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산에 가기로 했다. 부산행 기차에 올라탄 나는 새로운 풍경에 피곤함을 잊고 예전의 명랑했던 나를 불러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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