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방학이 있었으면 해서_2화
흰여울 문화마을
부산역에 내리자 전날의 걱정은 사라지고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차가운 공기와는 다르게 햇볕은 따뜻해서 잠시 마스크를 벗고 숨을 내쉬었다. '나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속으로만 되뇌다 진짜 1박 2일의 방학을 얻게 될 줄이야. 내게 주어진 이틀이라는 시간을 잠시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흰여울 문화마을
처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영도의 '흰여울 문화마을'이었다.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곳은 해안가 절벽을 따라 안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색색의 집들이 인상적인 곳이다. 그래서 부산에 간다면 이곳을 꼭 처음으로 가봐야지, 생각했다. '흰여울 길'은 봉래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흰 눈처럼 보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실 이곳은 가파른 절벽 탓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의 정착지가 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해 문화예술 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구불구불한 흰여울 길을 걷다 보면 소품샵, 독립서점, 카페 등 눈길을 끄는 곳들이 많다. 그러나 나의 눈길은 영도 앞바다에 하염없이 반짝이는 윤슬에 닿았다. 1월의 윤슬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눈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기나긴 팬데믹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는 '영도 앞바다의 신'에게 '우리 가족 몸 상한 데 없이 잘 이겨내줘서 감사하고 지켜줘서 고맙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렸다. (종교가 없는 나는 때와 장소에 맞게 나만의 신을 만들어 내곤 한다. 가끔은 간절하게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에)
기도를 드린 후 중간에 놓인 계단으로 내려가서 해안가로 길게 이어진 '절영 산책로'를 걸었다. 높은 곳에서 봤을 땐 은가루가 뿌려진 듯 환영처럼 보였던 윤슬이 가까이서 보니 손으로 건져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혼자 여행을 하면 내 눈을 사로잡은 풍경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순간을 만날 땐 다음 일정이 늦춰지더라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 눈과 마음을 앗아간 풍경에 시간을 마음껏 할애한다. 누군가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영도 앞바다에 넘실거리던 윤슬'이라고 말하고 싶다.
깡통시장
오후 간식으로 떡볶이를 먹기 위해 버스를 타고 깡통시장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여행자들과 시민들이 북적거렸고 그 틈바구니를 뚫고 이가네 떡볶이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이미 대기줄은 어마어마했고, 배고픔에 맛집은 포기하고 대기줄이 적당한 곳을 찾아 떡볶이와 어묵을 시켰다.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해 떡 하나에 배고픔을 달래고 어묵 국물을 마시면서 '여기도 맛있네, 뭐' 하며 맛집을 포기했다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배가 어느 정도 차자 친구끼리 또는 가족끼리 놀러 와 떡볶이를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 시댁에 있을 남편과 아이가 생각났다. 출산하고 처음으로 아이를 봐주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어주신 시어머니, 우리 사이의 묵은 감정은 일단 뒤로하고 그 손을 덥석 잡고 서둘러 아이를 맡긴 나. 이때부터였다. 그동안 어머니와 나 사이에 우뚝 솟아 있던 설산에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서 그 온기에 조금씩 눈이 녹아내린 것도.
나는 핸드폰을 켜고 남편에게 아이는 잘 있냐고 문자를 보냈다. 남편과 아이는 전시관이며 해양박물관이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어머니도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아하신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후회 없이 놀다 오라고 말했다. 나는 후회 없이 놀기 위해 순대 한 접시를 추가했고 떡볶이 국물에 싹싹 찍어먹었다. 그리고 예약한 숙소가 있는 해운대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3편에 계속)
*사진 출처_부산광역시 문화관광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