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방학이 있었으면 해서_3화
내가 양보를 하는 이유
해운대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깡통시장에서 간식을 야무지게 먹고 예약한 호텔이 있는 해운대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자갈치역에서 해운대역까지는 약 1시간 15분. 꽤 먼 거리라 나는 서서 가는 동안 저녁 식사를 할 식당을 고르고 내일 루트를 생각했다. 몇 분 후 내 앞자리의 학생이 일어났다. 나는 바로 앉아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가족과 함께 왔을 땐 차로 이동해서 먼 거리인 줄 몰랐는데 부산이 넓기는 넓구나. 이대로 한 30분만 자야겠다.'
그렇게 눈을 감으려는 찰나, 모녀 세 명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엄마와 딸 두 명, 이미 자리는 만석이고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계속 서서 가기에는 무리일 듯 보였다. 내 다리는 천근만근, 허리는 뻐근, 눈은 스르륵 감겨오고... 하지만 서서 가야 할 아이들이 걱정 돼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 손짓을 본 엄마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첫째 아이 손을 잡고 내 자리에 앉힌 뒤 둘째를 언니 무릎에 앉게 했다. '저는 괜찮아요.'라고 하니 엄마는 중국말을 했다.
'아, 중국분이시구나.'
나는 휴대폰을 꺼내 구글 번역으로 '저는 괜찮습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라고 썼고, 그 글을 본 중국인 엄마는 그제야 웃어 보였다. 나는 아이들 옆에 서서 가다가 내 앞자리도 났길래 중국인 엄마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그녀는 미안한지 괜찮다며 나에게 앉으라며 손으로 훠이 훠이 저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고 허리가 뻐근해서 멋쩍게 웃어 보이며 아이들 옆에 앉았다.
남은 시간은 20분. 아이들은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시댁에 있는 딸이 생각나서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가끔씩 아이들을 보면 내 딸이 생각나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내 아이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행이나 조건 없는 양보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누군가의 양보와 도움을 받았으니, 이젠 내 아이가 나 없는 곳에서, 혹은 나 없는 세상에서 언젠가 내가 했던 선행이 아이에게 되돌아가길 바라면서.
해운대 신라스테이
부산역 '짐캐리'에서 맡긴 짐이 신라스테이에 도착해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사는 지역의 신라스테이보다 훨씬 객실이 넓었다.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겉옷을 의자에 걸어놓으니 긴장이 확 풀렸다. 나는 침대에 쏙 들어가 안경을 벗고 팔을 양 옆으로 벌리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시 혼자 여행을 떠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이 나는 나이를 먹었고 내 몸도 늙어가고 있었나 보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확인하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다시 돌아가면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어, 더 나이 들기 전에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2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살짝 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허리가 괜찮아져서 저녁을 먹기 위해 겉옷을 다시 걸쳤다. 저녁은 호텔 밑에 있는 <기요항>이라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다시 해운대 쪽으로 나갈 힘도 없고 오면서 눈여겨본 식당이라 허기만 달랠 요량으로 들어갔다.
한 테이블 빼고 모두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연어덮밥 세트를 시키고 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가운데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았고, 많이 기대하지 않았던 연어덮밥 세트가 맛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마지막 연어를 입에 넣고 티슈로 입을 천천히 닦았다. (마지막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