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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Feb 17. 2024

다시 한번, 겨울과 사랑에 빠지기 (3)

크로스컨트리 스키, 도전!

강원2024가 막바지로 다가가니 한시름 놓기도 하고, 위원장님도 나도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위원장님께 크컨 타보고 싶다고 졸랐다. 사실 계속 재밌겠다~는 말로 타보고 싶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고, 타볼래요?라고 했을 때도 빼지 않았다. 위원장님이 내 발사이즈를 물어봤는데 위원장님 발사이즈랑 내 발 사이즈랑 같은 것도 행운.

두근두근.. 멋지다.. 루이비통에 일하면서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아웃도어 스포츠용품 점에 가면 환장하는 여자가 나다. 그런데 이렇게 흔하지 않은 것을 체험해 보게 되니 더욱 가슴이 뛰었다.


처음 타봤을 땐 시간이 막 많은 건 아니어서 이렇게 경기장 안에서만 조금 왔다갔다 해보고 사진만 멋있게 찍고 들어왔다.


올림픽 시작 전 혼자 스키장에 스키를 타러 갔는데 스키에 부츠를 고정한 순간부터 두려움이 몰려왔다. 스키리프트까지 가는 것도 무서웠다. 근데 일단 스키리프트에 타서 제일 낮은 슬로프부터 갔다. 한참 꼭대기에 서있다가 최대한 사람이 없을 때 내려갔다. 어라? 그런데 생각보다 탈만 하다. 아니, 오히려 스피드가 너무 나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 더 높은 슬로프로 올라갔다. 또 무섭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려가나 자세히 보고 내려가니 또 재밌다. 그렇게 몇번 더 높은 곳으로 가봤다. 슬로프 입구에 중급자라고 써있었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나보다 더 못 타는 걸로 보이는 사람들이 힘들게 내려가고 있다. 나도 내려가도 되겠구나. 그래서 그냥 내려갔다.


그렇게 2-3시간을 탔다. 이 전엔 타면 다리근육이 불타듯이 힘들었지만 이번엔 2시간 이상을 타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 여전히 파랄렐은 안되지만 그래도 파랄렐 해보려고 노오력은 해봤다. 혼자 그렇게 타다보니 어느새 두려움은 잊혀지고 재미가 붙었다.


크로스컨트리엔 클래식과 프리스타일이 있는데, 클래식은 영상에 내가 탄 것처럼 눈에 트랙이란 걸 파놓고 저 안에서 타는 걸 클래식이라고 하고 프리는 그냥 평평한 길에서 스케이트 타듯 달리는 걸 프리라고 한다. 클래식이 처음 탈 땐 더 쉽다고 해서 클래식을 탔다. 위원장님이 직접 알려주셨는데 처음에 평지에서 출발부터 시작해 걷기, 더블폴링, 등 자세도 알려주셨다. 물론 시간이 없으니 속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그리곤 바로 코스로 돌입. 이 날 날씨도 좋아서 타기가 아주 좋았다. 활강할 때 알파인에 비하면 언덕도 아닌 언덕이지만 크컨이랑은 다르다. 위원장님이 알려준 자세로 활강을 하니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커브도는 건 알파인이랑 같이 바깥쪽 발에 힘을 줘야하는데 알파인이고 뭐고 난 초보라 그걸 잊고 직진으로 내려오다가 커브를 보고는 '어떻게 돌지?'라는 생각 밖에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초보.. 그래서 넘어지긴 했지만 너무 재밌게 탈 수 있었다. 이 날 나는 스프린트 선수들이 타는 1.5km 코스를 완주했다.




내가 선수도 아니고 일반인이니 우쭈쭈하면서 잘 가르쳐주셨다. 알려준대로 활강하니 바로 넘어질 줄 알았는데 끝까지 왔다며 대단하다고 칭찬, 겁이 없다고 칭찬(?), 한 20년 전에 만났으면 크컨에 한 획을 그엇겠다며 칭찬. 칭찬의 힘은 대단하다. 그리고 나는 채찍보단 당근으로 잘 해나가는 인간이다.

크컨을 탈 때 배낭에 먹을 것, 마실 것을 바리바리 챙겨 중간에서 이렇게 먹고 마시는 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알려주셨다. (이때는 먹고 마실걸 안 챙겨서 못 했지만)


위 영상을 찍고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다 보여주며 온 동네방네 자랑했다. 1.5km코스 완주했다며. 사실 선수들이 3분대에 도는 코스를 나는 30분에 걸려 완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3.75km를 약 한시간에 걸쳐 완주할 수 있었다. 두번째날은 다른 분과 탔는데 이 분은 내 활강 영상을 보고는 내 실력이 안되는데도 스파르타로 태우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어서 꼬리뼈가 골절됐다. 타기 시작했을 때 초반에 넘어져서 엄청 아팠는데 그 상태에서 난 3.75km를 완주했다. 그러다 완주한 기쁨에 까불다가 또 넘어져서 꼬리뼈가 정~말 아팠다. 그런데도 좋았다.


아직도 나는 스린이지만 무슨 상관이랴. 스키탈 때 이미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으면 그걸로 그만인 것을. 더 이상 나는 스키탈 때 울지 않게 됐다. 스키를 좋아할 수 있게 되고 겨울과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됐다. 내가 재밌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스키를 잘 타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젠 어떻게 하면 겨울마다 강원도에 갈 수 있을까 궁리 중이고, 그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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