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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Jun 24. 2024

한국에 온 지 10개월

아차, 벌써 10개월

내가 작년 3월초에 받게 된 유럽영주권은 무한히 이어지는게 아니라 유럽을 나온 시점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취소가 된다. 아차, 사실 이제까지 2년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1년이다. 난 영주권을 목적으로 유럽을 간 것이 아니니 영주권을 딴 것 자체가 축하할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했을 때 이게 왜 축하할 일일까 매우 혼란스러웠을 정도이고 일반적으로 5년짜리가 나온다는데 난 10년짜리가 덜컥 나왔을 때도 숨막히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와서 10개월을 지내면서 나름 만족했다. 내가 그토록 목말라하던 '커뮤니티'에 속해서 이런저런 일도 해보고, 오히려 커뮤니티가 너무 많아서 어디에 골라서 들어갈까 고민할 정도였다. 올림픽이라는 일생에 한번 일을 해볼까 말까한 이벤트에서 일해보고 그 과정에서 스포츠라는 분야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지금은 또 어떤가? 일시적인 일이라고는 해도 한국에서 영어를 쓰면서 유럽과 비슷한 컨디션을 제공해주는 회사에서 나름 재밌게 일하고 있다. 운동도 외국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이 하고 새로운 운동도 여러가지로 배우고 있다.


한 마디로 우려했던 만큼 전혀 나쁘지 않다. 그런데 아예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시적으로 하는 현재 일은 원래 일하기로 한 기한이 지나면 연장이 될 수도 있지만 안될 수도 있다. 연장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연장이 된다고 해도 지금의 라이프 스타일이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아닌 것 같다. 일과 생활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하루 3시간이상의 통근시간, 소비유혹이 높은 환경 그리고 높은 인구밀집도, 음식이 의외로 나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집인 일산부터 시청까진 다행히도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종점에서 종점까지라 버스가 만석이라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상황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편도 1시간반이 꼬박 걸린다는 건 무시못할 시간이다. 출퇴근길엔 피곤해서 사실상 거의 수면, 그것도 아주 딥슬립을 한다. 그게 피로도를 특별히 낮춰주진 않지만 그래도 부족한 수면시간을 조금은 보충해주는 것 같다.


소비유혹이 높은 환경. 유럽에서 살 땐 인스타 광고든 어떤 광고도 별로 매혹적인 게 없다보니 크게 살 일이 없었다. 아무리 사봐야 아마존에서 생필품을 사는 것 정도? 근데 한국은 비싸고 예쁜 것들이 참 많다. 한국브랜드도 아니고 내가 유럽에 살 때 몰랐던 고가의 유럽 브랜드들. 오해는 마시라. 명품은 아니다. 내가 보는 비싼 것들은 대부분 아웃도어나 운동용품들인데 참 비싸다. 


인구밀집도는 단연코 나에게 최고 스트레스다. 난 원래도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했다. 지옥철을 타서 여러명에게 둘러쌓여 낑겨가는 그런 상황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외국과 한국살이의 차이점 중 하나를 'Personal Space'라고 하던데 정말 맞는 말같다. 나는 누군가 불필요하게 너무 가까이 오는게 좀 불편하다. 버스처럼 좌석이 딱 정해져있으면 모르겠지만 지하철에 서있는데 어쩔 수 없지만서도 온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상황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회사에서 동료가 의자에 앉아 필요 이상 가까이 오는 것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알고보니 나였다. 나..프로 불편러인가?


마지막으로 의외로 음식. 음식이라니!!!! 한국오면 행복할 줄 알았다. 맛있는 음식 실컷 먹으니까. 근데 그것도 처음 2-3개월이 그렇지, 아무리 짜장면, 치킨 먹고 싶다고 해도 그걸 매일 혹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 먹는게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유럽에서 매번 해먹던 음식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유럽이라서 쉽게 해먹었던 것들. 품질은 좋은데 훨씬 저렴한 빵, 치즈, 버터, 요거트는 말할 것도 없고 철마다 달라지는 값싼 과일, 채소 등등이 참 그리운게 아이러닉하다. 


노마드 생활을 하시던 모모님이 나에게 말씀해주신게 갑자기 기억난다. 여러나라에 살아서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막상 또 그렇지 않다고. 일본에 살았다보니 왠만한 스시나 라멘은 돈이 아깝다. 그 뿐이랴? 홍콩 음식, 말레이시아 음식, 유럽 음식 모두 현지에서 먹다보니 한국에선 한식집 가는게 제일 좋다. 다른 음식들은 그 값어치를 하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또 그만한 맛집을 가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도 고민 중이다. 유럽엘 다시 가야할까? 다시 간다고 지금보다 행복할까? 아니면 이전에 머물렀던 7년보다 행복할까? 가면 언어가 일단 되니까 좀더 편하긴 하겠지? 안 가고 한국에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후회되지 않을까? 아직 젊은데 외국에 더 살다와도 되지 않을까? 벌써 한국에 정착해버리기엔 아깝지 않나?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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