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방문하고 싶은 나라
홍콩에서의 근무는 무려 일주일에 6일 근무가 평균이었다. 또 대부분 오후 쉬프트를 하다 보니 매일 새벽 늦게 잠에 들었고 그러다 보니 하루 쉬는 날에도 늦게 일어나 어디 딱히 놀러 나갈 일도 없었다. 그래도 크게 상관없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친구가 되어 가족같이 날 챙겨줬다.
몇 개월 일하면서 광둥어로 체크인/ 체크아웃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직원들과의 의사소통도 간단하게는 할 수 있었다. 친구들도 내가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계속해서 가르쳐줬다. 그러다가도 내가 못 알아들어 곤란한 상황이 올 때면 항상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중국권에 있다 보니 광둥어 말고도 만다린 (중국 본토)의 압박도 컸다. 다만 만다린은 내가 크게 배우고 싶진 않았던 것이 중국 관광객들이나 관광 가이드들은 꽤 무례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한테 ‘중국 호텔에서 일하면서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냐’라고 넓은 로비에서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지른다던가 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럴 때면 매니저는 항상 내 대신 가이드한테 같이 삿대질을 하며 ‘여긴 중국 호텔이 아니라 인터내셔널 호텔이야!’라며 ‘내 스태프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라며 나를 항상 감싸주었다. 그럴 때면 항상 나는 뿌앵- 하면서 백오피스로 들어가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정말 ‘뿌앵’이 그렇게 딱 맞는 표현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울고 나오면 또 농담을 하면서 날 웃겨주고 토닥여주고 옆에서 지켜준 동료들이었다. 저 놈이 이상한 거니까 상처받지 말라며. 이런 동료들을 어디서 만날까.
일 막바지에 설날을 맞게 되었다. 나는 일할 때뿐만 아니라 생활 광둥어도 열심히 익히곤 했는데, 그건 역시 먹부림을 할 때 유용하게 쓰였다. 호텔 주변으로 맛집이 많았는데 영어는 절대 통하지 않을 곳이라,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서 어떤 메뉴가 있는지 하나하나 다 먹어보고는 나중에 혼자 가서도 테이크아웃 정도는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익혔다. 그건 설날이 되니 빛을 발하게 되었다. 내 얼굴을 익히 아는 식당 사장님들에게 홍콩 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며 홍콩식 손인사를 하니, 다들 ‘홍빠우’를 쥐어주었다. 설날에선 상사나, 결혼한 동료, 어른들에게 세뱃돈을 받는데 나는 주변 식당의 사장님들에게까지 받았다.
쉴 새 없이 1년을 달리고 돌아보니, 일을 열심히 한 기억, 동료들과 먹고 마시고 놀던 기억 외에 홍콩 자체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 기억 속의 홍콩 거리는 항상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밤의 거리였다. 그러다 보니 일도 중국어 (광둥어, 북경어)도 익숙해질 때쯤엔 거리로 혼자 나가기도 했는데 작은 도시 면적에 넘쳐나는 차와 사람들로 숨 막히는 느낌이었다. 어딜 가도 사람을 치지 않을지, 치이진 않을지 걱정을 하며 걸어야 하니, 탁 트인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몇 개월 못 채우고 그만둘 것이라는 홍콩 친구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리고 난 1년을 채운 최초의 인턴생이 됐다. 의지의 한국인!! 나는 어떤 면에선 꽤나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재미있고, 배우는 언어도 재미있고, 게다가 동료들도 너무 좋으니 여러 박자가 다 잘 맞아떨어져 그만큼 버틸 수 있었다. 일주일에 6일을, 하루에 10시간은 우습게 넘겨버리는 근무 시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니 신기하게도 갑상선 약을 중간부터 먹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일을 다 마치고 마지막에 2주 정도 휴가를 받아 쉬기도 하고 홍콩 구경도 그때서야 좀 하게 되었는데 웃기지만 슬프게도 그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남는 기억이라곤 일하고 먹고 취한 기억들...
호텔에선 2인실을 사용했는데, 룸메이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비록 둘이서 뭔갈 많이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기억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친구는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어머니가 홍콩에서 무려 국제학교 교감으로서 일하고 계셨다. 같은 호텔은 아니었고 내가 일하는 호텔과 같은 그룹에 있는 다른 호텔에서 일을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내가 가족도 없이 혼자 와서 일하는 것에 대해 안쓰러우셨던지 몇 번인가 같이 밥도 먹고 크리스마스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호텔에서 고급 식사도 해보고 선물도 받고 감개무량했다. 그 친구와 어머니는 생일이 비슷해서 같이 축하하곤 했는데 그때 나도 초대받아 축하하곤 했다. 그 친구는 벌써 애를 낳고 캐나다에서 자리 잡고 살고 있다.
그 친구와 1년간 룸메 생활을 하며 정말 트러블 없이 잘 지낸 것이 신기하다. 나는 항상 저녁에 일을 했고 그 친구는 아침에 일을 해서 사실상 간단한 인사 외엔 크게 어울리고 할 시간은 없었지만 나도 그 친구도 잠을 너무 잘 자서 서로가 자는 시간에 준비를 하더라도 심적으로 크게 불편함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둘 다 깔끔한 스타일은 아니라서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모두 그 호텔에 있지 않다. 나를 중국인에게서 감싸준 매니저 한 명만 남아있고, 그때 만나서 결혼한 커플이 둘, 다른 호텔에서 일하고 있거나, 경찰이 됐거나!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홍콩에서 인턴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신기하게도 근 몇 년간 2-3번은 간 것 같다. 홍콩 사람들의 의리는 찐이다. 몇 년 만에 가도 내가 좋아하는 핫팟을 먹으러 룸을 빌려 모인다. 식당에서 제일 큰 15명 정도가 앉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시끌벅적하게 떠들면, 나도 그 순간만큼은 10년 전의 나로 돌아가곤 한다. 힘들다고 찡얼 대면서도 광둥어 욕을 걸걸하게 하면서 홍콩 사람처럼 목소리가 커진다. 홍콩에서 살래?라고 하면 단번에 그래!라고 하기는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가족 같은 친구들을 보러 가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갈 수 있고, 가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홍콩은 '쇼핑천국'이지만 나에겐 따뜻한 사람들, 내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혼잡 속 편안함을 느끼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