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린 Apr 04. 2022

또다시 새로운 나라로

마음의 고향 2

호주에서 그렇게 돌아오고 서는 더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간의 기억을 지웠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호주에서는 돈을 거의 벌지 못했고 버는 족족 필요한 곳에 그곳에서의 생활을 연명하듯이 돈을 썼기 때문에 남은 돈도 없었다. 귀국 비행기표도 처음 출발할 때 오픈티켓으로 구매했기 때문에 귀국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호주에서도 가끔 와우를 했던 기억은 있으나 무자비한 인터넷 속도로 제대로 하진 못했다. 한국에 오면서 다시 와우를 붙잡게 됐는데 현실이 암담하니 게임 세계로 로그인하게 된 것. 내가 어느 정도의 아우저였는지 말할 것 같으면, 게임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좋은 길드에 가입해,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게임을 하게 되니 정신을 차렸을 땐 던전에 들어가 8시간 9시간씩 게임을 하는 헤비유저가 되어있었다. 가끔 재미로 하는 레이드에선 마이크를 잡고 하기도 했으며 길드 사람들과 현실에서 만나기도 했다. 당시의 사람들과는 연락을 하진 않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락을 주기적으로 하고 만나는 친한 사람도 있고, 얼마든지 연락이 가능한 사람도 있다. 정말 나의 영혼의 쉼터였다. 



어느 날 스위스에서 같이 학교 다닌 언니가, 내가 노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해왔다. 요는 자기가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는데 가지 않기로 해서 네가 한번 면접을 보는 건 어떻겠니라는 것. Why Not??? 면접을 본 곳은 홍콩의 한 호텔이었고 매니지먼트 트레이니로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1년의 인턴쉽이었고 호텔 방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었으며 월급도 적지만 따로 받았다. 렌트비가 미친듯한 홍콩의 수준을 생각하면 방을 해결하고 월급을 조금이라도 주는 것이 전혀 나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경력 0의 내가 어디서라도 시작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홍콩의 호텔과 전화 면접을 보고 통과. 이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돼 한 달 후 출국할 수 있었다. 면접 시, 중국어를 해야 하지 않냐는 내 질문에 호텔에선 괜찮다고 했지만 그것은 현지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호텔 측에서 배우라고 한 건 전혀 아니지만, 내가 1년이나 살아남으려면 배워야만 했다. 


내 동료들은 내가 그곳에서 1년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말했다. 내 전에 몇 번 온 적이 있으나 다들 6개월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고들 한다. 그 호텔은 5성급은 아니었지만 4성급에 방이 무려 1000개가 넘는 호텔이었다. 나는 처음에 전화 교환 부서부터 시작해서 예약 부서, Rooms Division의 모든 부서를 짧게 돌고 나머지 기간은 프런트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방 1,000개 이상 호텔의 프런트 근무는 마치 전투와도 같았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도 엄청 친해졌다. 다만 그곳에서의 공용어는 광둥어였다. 하우스키핑에 전화해서 몇 호 체크아웃한 것도 영어로 하면 못 알아들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광둥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숫자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은 통문장 암기로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그대로 외워서 그대로 쓰는 것. 그렇게 나는 통문장 암기가 참 좋다는 것을 몸으로 스스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침 쉬프트는 너무 힘들어서 저녁 쉬프트로 부탁해 대부분 일했다. 너무 재밌었다. 느지막이 출근해서 나는 인턴이라 밤 11-12시쯤이면 퇴근할 수 있었지만 프런트 일이 완벽히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원래 인턴한테는 시키지 않는다는 돈 관리도 차후엔 거의 내가 독단으로 맡아하게 됐다. 왜냐면 난 일을 잘했기 때문이다!! 오류도 거의 없고, 있어도 금방 찾아내서 캐셔때문에 오버타임을 수두룩하던 동료들도 제시간에 떠날 수 있었다. 


더 늦게까지 일하더라도 좋았다. 그런 날엔 친구들과 핫팟 打邊爐를 먹으러 시내에 나가 새벽 5시까지 놀고 마시고, ‘미니버스’를 타고 호텔로 귀가했다. 홍콩의 밤엔 ‘미니버스’가 운행되는데, 홍콩 말을 못 하면 타기 두려워지는 버스다. 정거장마다 방송도 안 나오고 내릴 때 되면 손 들고 ‘내려요~’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 문제는 밤이 되면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니 나 같은 외국인은 어렵다. 그래도 난 택시보단 미니버스를 탔고 탈 때마다 동료들이 ‘얘 xx 정거장에서 내려줘’라고 운전사한테 말해줬다. 그러면 같이 탄 사람들이 정류장이 다가올 때쯤 나에게, 너 이번에 내려야 돼~라고 챙겨주곤 했다. 




홍콩의 기억은 1년이지만 너무 좋은 기억이 많아서 이어서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린 2년 Part. I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