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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Mar 31. 2022

잃어버린 2년 Part. II

내 생애 첫 '실패'한 해외생활. 

내 여권에 흔적조차 없는 첫 워킹홀리데이는 호주다. 내가 가기 직전에 법이 바뀌어서 한 고용주와 6개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세컨드 워홀 비자 제도가 시작된 때였다.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비자받기가 제일 쉬운 나라 중 하나였고, 피지에 있으면서 피지 다음으로 처음 가본 나라가 호주 시드니여서 별 것 아닌 친근감에 시드니로 결정했다. 당시에 ‘호주에 워홀을 가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여자들이 백인 남자와 자는 것을 서슴지 않으니 호주 워홀을 가는 여자들은 결혼 정보회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자기들 얘기하는 거더라...




나는 호주에 가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외국생활은 피지나 스위스에서 해봤지만 언제까지나 미성년으로서 학생으로서 어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주는 생활을 했다. 나는 그냥 ‘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할 것들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호주는 달랐다. 순전히 내 선택으로 가기로 결심했고, 비자도 내가 신청해서 땄으며, 나 혼자 가서 생활을 일궈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검색이었다. 다음 카페인지, 네이버 카페인지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그런 워홀 카페에 가서 사람들의 경험담을 수없이 읽었다. 호주는 담배가 엄청 비싼데, 담배 한 보루를 숨겨서 가져오면 그걸로 공항 픽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카페에서 미리 집을 알아봐서 한국인들이 같이 사는 그런 곳으로 가기로 했다. 시드니에서 제일 높고 비싼 아파트라고 했다. 


당시 난 왜 그렇게 짧은 치마를 좋아했나 ㅎㅎ


호주에 도착하니 모든 게 좋아 보였다. 날씨는 너무 좋고 피지에 살아봤으니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도 않고 딱 좋았다. 또 한국인 언니 오빠들과 한 집에서 살게 되니 그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 집은 흔히, ‘닭장’이라고 불리는 집이었다.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인들이 이렇게 사는데, 실제로 엄청 좋고 널찍한 방이 두 개와 넓은 거실이 있는 집이었는데 두, 세 사람이 살면 적당한 집을 10명이 살고 있었으니 닭장이라고 불릴만했다. 내가 지내던 여자 방은 좁은 방에 나를 포함한 4명이 살았고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남자 방은 넓었고 그곳에도 5명이, 또 거실에 더 저렴한 월세를 내고 한 명이 살았다. 


그런 대형 ‘고급’ 아파트에서는 10명씩 살고 하는 게 불법인지, 아파트의 규칙에 어긋나는 건지 갑자기 아파트에서 미리 통지 없이 단속하는 날들이 있었다. 물론 닭장 셰어를 하면서 사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사람이 사는 집에 미리 통보도 하지 않고 들어와 집을 훑어보는 것은 주거침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내용을 쓰면서 다시 한번 검색해보니 닭장 셰어에 관한 내용이 생각보다 인터넷에 많이 나오지 않고, 있어도 너무 옛날에 올라온 내용들이다. 내가 있던 때와 지금은 강산이 한 번쯤은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는 처음에 몇 군데 돌면서 면접도 보고 일자리도 구해보려고 했으나 처절하게 실패했다. 당시의 나를 생각해보면 나도 날 안 뽑아줄 것 같긴 하다. 내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곳은 의외로 말이 통하는 호주였다. 그때의 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어서 ‘영어를 할 줄 아니 일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 그랬던 만큼 한인식당이나 한인이 운영하는 업체에선 더더욱 일하고 싶지 않았다. 피지에 있으면서 추잡한 한인 사회를 목격하기도 했고, 법적으로 시급이 20불은 되는 호주에서, 그에 반도 안 되는 돈으로 한인들을 이용하는 것도 같은 한국인들이었다. 


거리에는 또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외 많은 동양인으로 넘쳐나곤 했다. 그냥 지나가다가 한국말이 들리니 더 버티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대체 서울에 있는가, 시드니에 있는가. 꼭 백인이 좀 있는 서울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해외생활에 성공과 실패를 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곳에서의 생활도 나는 특별히 '성공'했다거나 '실패'했다고 규정짓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에서건 나는 1년은 채우며 일하고 생활하고 여행도 했다. 언어도 배우고 현지인과 어울리며 친구도 만들어 내가 그 나라를 좋아하건 말건 재밌게 생활했다. 그런데 이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는 처절한 '실패'다. 제대로 된 생활도 못했고, 여행도, 영어도 더 늘지 못했고, 현지인이랑은 거의 말도 못 해봤던 것 같다. 그곳에서 만의 추억도 거의 없고 내 여러 가지 실수로 오히려 부끄러운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제대로 시도 한 번 해보지 않고 포기했다는 것이다. 


호주는 한 개의 거대한 대륙, 섬이니만큼 한번 떠나오면 다시 가기가 쉽지 않다. 어디서도 그리 가깝지 않다. 한국에서도 10시간은 걸리고 유럽에서 가려면 더더욱 오래 걸린다. 물가도 엄청 비싸니, 그곳에서 돈을 벌면서 여행을 가지 않으면 사실상 여행 가기가 쉽지 않다. 한번 가면 그래도 한 달 정도는 있어야 크나큰 대륙의 개미 털만큼 구경이라도 할 텐데 2주 휴가를 받는다 해도, 가기가 참 어렵고 망설여진다. 

나에게 첫 '실패'를 안겨준 곳일지는 몰라도, 그때의 나는 참 싱그러워 보인다.


지금 같았으면 일단 시드니와 같은 큰 도시는 아예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퍼스, 케언즈 이런 상대적으로 한국인이 적은 곳에 먼저 가서 제일 싼 호스텔에 있으면서 구경을 했을 텐데 그 당시에 난 그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워킹홀리데이를 그런 식으로 날려버린 게 너무 아깝기는 하지만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별 시도 없이, 당시엔 미련 없다고 고작 3개월 만에 훌쩍 떠나버린 경험은 아직도 나에겐 너무나 쓰라린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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