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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Nov 04. 2023

그런 날이 있다.

도대체 며칠째인가.


미주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캄차카 항로에서 발생한 화산재의 위험을 피해 우회항로로 돌아서 인천으로 지연 도착하고 있다.

항로를 우회하게 되면 , 운항시간이 길어져 항공기는 평소보다 연료를 더 채워야 하고, 추가된 연료 무게만큼 무게를 빼야 한다.

말 못 하는 수하물들을 컨테이너째로 내려 항공기의 무게를 맞추고 운항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한 여파가 어마하다.

지연도착으로 대거의 환승객들은 연결 편을 놓치는 일이 속출했고, 심지어 그들의 수하물도 대부분 안 실려와서 난장판이었다.

한두 편도 아니고 미주에서 출발하는 대형 항공기들이 연이어 며칠째 이러고 있으니, 공항 직원들은 환승객 인파에 묻혀, 뒤늦게 도착하는 짐들에 묻혀 미쳐가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첨단기술의 항공기도 자연 앞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으니, 그저 화가 난 산이 진정될 때까지 할 수밖에 없지만, 이건 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한 편 해결되면 또 다른 편이 연이어 그러니 죽을 맛이다.


그나마 지금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장기간 이 사태가 지속된다면 운항 승무원 부족으로 결항하는 항공편이 속출할 것이 뻔한 일이다.

이미 미국국적의 항공사는 인천으로 도착하는 항공편을 결항시키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일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이런 비정상적인 운항은 참 힘들다.


미국에서부터 환승을 목적으로 인천에 도착한 승객들이 지연으로 다음 편을 놓치면, 다른 나라를 찍고 가야 하는 요상한 스케줄을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는 작은 비행기로 하루에 한 편만 운항을 하고 있는데, 몇 달 전부터 예약한 승객들로 늘 만석이다.

환승객의 지연 도착으로 연결 편을 놓쳤더라도, 모든 비행기에는 예약자가 우선이라, 직항 편이 만석이면 좌석의 여유가 있는 방콕 편을 타서, 다시 다른 편을 이용해서 캄보디아까지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말 같지 않은 스케줄을 승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정말 지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해를 시켜야 하는 것은 공항직원들이 회피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이다.


“ 죄송합니다. 고객님, 캄보디아행 좌석이 만석이라 내일 방콕 편을 타시고, 그 다음날 캄보디아 편을 타셔야 합니다. “

“ Are you kidding me?”


그래, 나도 그냥 농담이었으면 좋겠지만,

I am 진지예요

방법이 없으니, 억지로 두장의 탑승권을 거부하는 승객의 손에 쥐어 줘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이미 미주 국내선을 타고 인천까지 왔는데, 여기서 또 타고 타고 환승으로 가라니, 어느 승객이 동의를 하겠는가 말이다.

거기에다가 당신의 수하물은 아직 미국에서 출발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마지막 한방을 더 먹이면서 말이다.


정말 노답인 비정상적인 운항이 며칠째 이어지니, 뚱마는 지칠 때로 지쳐버렸다.

공항 짬밥 벌써 몇 년 차인가, 공항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봤지만, 이런 일로 승객을 상대하는 일은 어렵고, 어렵다.

내공은 안 생기고, 퇴사만을 꿈꾸는 점점 나약한 뚱마가 되어가고 있다.


봄에는 안개와 해무,

여름에는 태풍,

가을에는 항공기 정비,

겨울이면 폭설,

계절마다 특색 있게 지연과 결항이 있다.

거기다가 유럽 화산, 중국 군사훈련, 해외공항 정전사태, 오클랜드 공항 물난리 등 나열하자니 지친다.




아직 도착 못한 수하물과 늦게 도착한 수하물을 처리하느라 쌍둥이 아들이 밥은 먹었는지, 학원은 갔는지도 잊고 있었는데, 밤 10시에 둘째의 학원에서 하원했다는 문자가 왔다.

7시 반이면 하원을 해야 하는 중2가 10시에 학원을 나오다니 무슨 일인지, 수하물이고 승객이고 일단 둘째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 아들, 여태까지 학원에 있었어?”

“네”

평소 싱거울 정도로 맑은 영혼의 둘째의 목소리가 지쳐 있었다.


“ 무슨 일 있었어?”

“ … 집에 가고 싶어요. 집 가서 다시 전화할게요.”

“ 그래.”


약간 울먹이는 것 같아 몹시 신경이 쓰였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또다시 주인 잃고 쌓여있는 수하물의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자정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을 때, 둘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녀석이 말이 없다.



“ 아들 너무 힘들면 학원을 잠시 쉴까?”

“ 아니에요.”


“ 엄마는 한이가 슬픈 게 싫어. 목표가 있더라도 너무 버거우면 좀 쉬었다 해도 되니까, 엄마는 한이가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았으면 해. “

“ 이번 주 수행평가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서 그래요. 오늘 수학학원에서 시험 보느라고 늦게까지 있어서 그래요. 괜찮아요. 계속 다닐게요.”


“ 그래, 엄마 오늘 늦을 것 같아. 잘 자. “




지금 중학교 2학년 아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부가 중요한 시기인 것은 맞다. 공부하기 제일 총명한 지금이 때인 것은 맞다.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륵 웃음이 나와야 하는 예쁜 나이에, 공부에 치여서 울먹이는 것은 뚱마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엄마가 일로 인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둘째가 공부로 인해 울먹인다는 것은 뚱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의무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쌍둥이에게 의무에 대해서 자주 교육을 시킨다.


엄마는 너희가 고등교육을 마칠 때까지  부양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너희는 그때까지 학생으로서 공부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건 기본적인 의무이다. 기본 의무를 소홀히 하면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긴다는 것이 뚱마의 가정교육의 기본틀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던, 직업을 구하던, 그건 너희들의 선택으로 의무가 책임으로 변화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고, 엄마는 졸업하는 날까지 돌봐야 하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결코 공부를 잘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회인이 되는 과정에서 학교라는 집단에서 어울림과 규칙을 배우고, 기본적인 지식을 쌓아, 본인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바른 어른이 되어라는 것이다.


나는 홈스쿨링을 반대한다.

코로나 기간 동안 나는 회사를 강제로 쉬어 집콕을 해야 했고, 쌍둥이는 줌 수업으로 학교 수업에 참여를 했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의무교육이 아니었다.

그냥 지식만을 주입식으로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 안에서 집단을 경험하면서, 지식을 배워 가며 바르게 자라는 것이 학생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주 뻔하고, 고지식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의무이다.


그런데, 둘째는 그 의무를 넘어 과도한 시험으로 인해 힘들어한다.

말문이 늦게 트여 초등학교 때 느린 학습자로 여겨졌던 둘째가 중2가 되니 더 힘들어 보인다

조금 쉬게 해주고 싶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떠한가,

공부에 대한 경쟁보다는 여린 성격의 둘째가 슬퍼하지 않는 것이 나는 더 중요하다.


둘째의 힘없고, 약간 울먹이는 전화 넘어 목소리가 나를 흔들리게 한다.

학생의 의무를 넘어 공부에 대한 욕심을 내게 한 것이 뚱마인 것 같아 미안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뚱마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있었나 보다

그래, 지금 중요한 것은 너의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날이 있다.

나는 어제와 다름없이 살고 있는데, 오늘이 힘들어져 버리는 그런 날이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인데, 내가 지쳐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오십의 뚱마는 이미 단련된 심신으로 견디어 낼 것이다.

늘 그렇게 한 것처럼 내 감정과 내 몸뚱이의 힘듬은 숨기고, 엄마로서의 의무에만 집중해서 이겨낼 것이다.


그럼, 15살의 너희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너희만큼은 지치면 쉬었으면 좋겠다.

성인이 되면 그런 날들 투성이니까,

지금은 지친다 싶으면, 그냥 좀 쉬었으면 좋겠다.


수학학원에서 둘째가 밤 10시까지 본 테스트의 결과를 문자를 보내왔다.


반 타작이다!

이 눔의 자슥을 확!

생각은 깊었지만 허탈한,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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