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책 한 권을 중고서점에서 꺼내본다. <마음>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이다. 이름 모를 독자들의 손때가 묻어있다. 밑줄이 그어져 있는 문장, 여백에 짧게 적혀있는 메모는 노인의 주름과 같다. 저자의 사진을 본다. 서양식 양복을 차려입은 옷매무새가 단정하다. 사선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든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서양식 자본주의가 밀물 듯이 들어와 일본이 근대화를 이룬 시대. 당시 일본의 상황은 전통이 무너지고 서양식 자본주의, 상업이 제일이라는 가치가 정점에 이르고 있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처럼 전례를 알 수 없는 격동기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마음>을 연재한다. <마음>은 제목 그대로 인간의 가변적인 마음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인간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한 무방비 상태에서, 재물과 이성(異性)에 의해 얼마만큼 흔들릴 수 있는가를 세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살을 목전에 앞둔 선생이 제자에게 유서를 남긴다. 분량이 꽤 두껍다. 선생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불신의 범주인 인간에 자기 자신도 포함되기에 고독하다. 행간을 읽어본다. 과거사가 뭉개져있었다. 선생은 어린 나이에 대부분의 유산을 작은아버지에게 빼앗긴다. 그가 가장 믿고 신뢰하던 작은아버지로부터의 배신은 타인을 불신하게 만든다. 특히 재물에 의한 변심을 경계하게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간에 대한 정(情)은 남아있다. 그에겐 가난한 고향친구 K가 있다. 갈 곳 없는 K를 하숙집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둘은 곧 연적관계에 놓이고 만다. 그는 자신을 향한 K의 믿음과 신뢰를 배신하고 여성을 차지한다. 결국 K는 자살한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서 혐오했던 작은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시대에도 재물과 이성(異性)에 대한 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아가 윤리가 재물보다 우위에 있었고, 윤리가 이성간의 사랑보다 우선시 되었던 시대가 희미해진 것이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는 점멸하는 시대를 애써 부여잡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재물과 이성 앞에 선 마음의 흔들림이라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에 주목한다.
다시 <마음>을 읽어본다. 그의 마음의 흐름이 내 마음에 덧입혀지는 것 같다. 여진이라는 낱말이 떠올라 사전을 살펴본다. 큰 지진이 일어난 다음에 얼마 동안 잇따라 일어나는 작은 지진이라 적혀있다. 재물과 이성의 가치를 무엇이라 말하기 어지럽고 괴로운 상황에서는 요동치는 마음을 그대로 수용해보는 것이 마음을 지켜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