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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브 Mar 13. 2017

건강 신드롬

어느 면으로 보나 생산적인 인간에 관심이 있는 성공학은 웰니스와 닮았다. 지금보다 나은 인간상을 추구하고 다음과 같이 인간상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긍정적이고 활발하다. 액체처럼 유연하게 사고를 한다. 주어지거나 스스로 만든 일에 차분히 몰입하다가도 열정적으로 노는 것도 가능하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고 올바른 선택을 이어나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 이 모습은 내가 읽은 <건강 신드롬>에서 비판하는 현재형 인간이다.



현재형 인간을 비판하는 게 가능할까? "누가 그런 미친 거래를 받아들이겠는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무조건 환희보다는 쾌락을 선택할 것이다. 생존본능이 투철한 모든 동물이 그러하듯. 쾌락은 끝이 나도 어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229쪽) 쾌락은 절제가 있어서 지속 가능하지만 환희는 브레이크가 없다. 죽음으로 내달린다. 술, 담배와 마약의 무절제한 질주는 환희를 일으킨다. 미치지 않고서야 건강한 쾌락이 아닌 환희를 받아들이겠는가.


라이프 스타일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나 러시아워로 대변는 포디즘에 이은 자아실현 세대의 출현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맞물려 있다. 포디즘 세대의 평생직장이 희미해지고 불안정한 직장이 일반화되면서 사회가 아닌 개인의 자아에 집착하는 현재형 인간이 나타났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신자유주의의 개인화가 현재형 인간이고 경쟁에 대한 불안 책임을 개인이 떠안았다. 라이프 스타일이 전체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면 그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닐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의 선택이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생존의 문제라면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선택해야 내 선택이 유효하다. 그것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아가 현재형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이 이웃에 대한 인간성을 정죄하는 근거가 된다면 어떨까? D자로 배가 볼록 나온 그는 게으르다. 저녁에 술을 마시는 그는 자기관리를 엉망으로 한다. 맵고 짠 안주는 덤이다. 담배를 태우므로 그는 건강에 무지하다. FPS 게임을 하는 그는 공격적이다. 각종 커뮤니티 활동은 시간 낭비이다. 그는 올빼미형 인간이므로 근면하지 않다. 종합하면 그는 나와 달리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 반사회적이므로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죄는 경솔해 보인다. 라이프 스타일로 그 사람의 몽타주는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나아가 그것은 완벽한 이상을 바라지만 현실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재형 인간 자신에 대한 정죄감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완전해 보이는 현재형 인간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배경과 환경의 불완전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점을 다시금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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