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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브 May 22. 2018

케이크메이커

사랑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타자에게 관용의 태도로 귀를 기울이게 한다. 고 전제하고 시작하자. 인간의 몸으로 사랑의 온전한 실천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실천 사이에는 목소리와 행위가 있고 거기에는 불협화음이 있다. 사랑이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먼저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타자에게 관용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은 추상이다.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타자는 누구인가. 귀를 기울이는 실천은 무엇인가. 또한 인간의 몸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단어와 이 단어가 대상으로 하는 무엇의 힘은 추상으로 인해서 매력적이다. 타자에게 관용의 태도가 사랑이라면, 편견과 차별을 허무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에 대한 믿음은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무수히 많은 타자를 발견한다. 타자가 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믿음에도 그 사랑이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저지르고, 목격하지 않는가. 오해가 생긴다. 사랑을 추상에서 구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있는가. 선의의 표현이 악의로 전달되기도 하지 않는가.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은 기쁨와 오해가 교차하며 미끄러지는 것과 같다. 사랑의 실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러나와 같은 이음씨가 나타난다. 그 후에 나타나는 문장들과 행동의 집합은 사랑이 폭력이 되지 않도록 추상의 사랑에 구상의 육체를 입힌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은 여백이 없는 구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어본다.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감독의 영화 <케이크메이커>는 파티쉐 토마스의 사랑을 그렸다. 독일의 베를린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남성인 토마스는 다소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성적인 몸짓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2018년 5월 24일 개봉  감독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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