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외투를 보고
초대장을 받았다.
물론 내 주머니를 털어서 참석하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긴 했다. 결제와 동시에 '존경하옵는 나리! 나리의 건강을 기원하며 극장에서 뵙겠다'라고 예약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약속한 그날, 지하실의 문턱을 넘으면서는 19세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했다. 극장이라는 어두컴컴한 지하공간이 낮인지 밤인지 시간감각을 흩트려 놓았고, 가운데 의자를 비추는 핀조명은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자리에 있던 이름표는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존재론적 고민에 답을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안나 카레니나 선생님이 되었다. 거기다 기타 선율로 시작한 민중가요스러운 러시아 노래 한 곡조가 머릿속 잡념을 극과 연동시켰다.
누군가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적을 수 없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핵심적인 부분만 언급하려고 한다. 연극은 제정 러시아의 9등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수난기가 웃프게 이어지다가 급작스러운 쉼표를 찍고 환상적인 마무리로 나아간다. 국면이 전환되는 부분에서는 각종 몰입을 유도하는 장치 속에서도 불현듯, 아 이건 갑자기 좀 그런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연기자와 조명장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극에 최대한 안착시키는 미션을 수행한다. 나는 이미 원작소설을 읽은 뒤였기에 비교적 상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같이 본 친구는 그래서 이 소설이 왜 그렇게 유명한 거야? 하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급작스러운 세계관 전환은 관객을 오히려 현실로 발붙이게 하는 반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다.
하물며 극도 그러한데, 글로 만든 출입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시키는 것은 더욱 읽는 이의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우리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표현이 어색하면 머릿속으로 표현을 되뇌고 존재하는 말인지 검색도 해본다. 인물관계도를 그리는 것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일단 참고 그냥 읽는다. 이름 말고도 모두 다른 인격을 가진 인물들임을 파악하는데 또 한참이 걸린다. 재미있는 건 또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쇼츠가 도파민을 터지게 할 동안 책은 점잖게 기다린다.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 가끔은 읽어도 읽어도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몇 번의 고비를 꾹 참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소설 속 풍광을 상상하고 이야기에 재미를 붙이게 된다.
다른 세계의 외견을 빌렸더라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지구에서 현실을 살고 있거나 살았던 누군가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몇 번의 글을 쓰면서 줄곧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 있다면 그 말이 전달되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떤 감상이나 통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글이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쓴 사람이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느끼게 만드는 글도 가끔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 내 이야기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