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대한 비판

선악의 기원을 읽고

by My Well

종종 들리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단어 중에 '극혐'이 있다. 말 그대로 매우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10년 전쯤 '혐'을 붙인 신조어가 우후죽순 생겨나다가 이제는 기사 제목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 듯하다. 진짜 혐오의 뜻을 담는 경우도 있겠지만 짜증 나고 화 나는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나도 몇 번 '아 진짜 극혐'이라고 내뱉은 적이 있다. (극혐에 진짜까지 붙였다.) 무한 로딩이 걸리는 컴퓨터에 대고 말했을 땐 속이 풀리는 것도 같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지는 통화가 끝나고 상대방을 생각하며 읊조렸을 땐 입에 불편감이 남았다. 그래도 사람인데 혐오라는 단어까지 써도 되는 걸까. 표현이 지나치다는 자기 검열이 작동했고, 어느샌가부터는 '극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지언정 입으로는 내뱉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2014년인가 '좋아요'만 있던 페이스북에 '싫어요'버튼이 추가된다는 소식이 화제 되었다.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공간에서 긍정적인 상호작용만 이뤄지길 원했기에 '좋아요'버튼만을 장기간 고집했다. 결국 '싫어요' 버튼은 아니지만 '화나요, 슬퍼요' 같은 다른 감정을 담은 버튼을 만드는 것으로 논의는 일단락되었다.


문득 유튜브가 궁금해졌다. 동영상 하나를 클릭하니 엄지손가락을 올린 손 모양 오른편엔 거꾸로 그린 손 아이콘이 있다. '싫어요'라는 이름을 붙이더라도 그 손짓은 야유를 보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영상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싫어요' 버튼을 눌러 감정을 표현할 것이다. 그렇지만 '싫어요'가 있으면 더욱 균형적인 소통이 가능해 질까? 어떤 것이 나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만든 영상에 누군가 싫어요를 누르면 상처를 받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무책임한 영상이나 부도덕적인 콘텐츠에는 ‘싫어요’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좋아요와 싫어요 숫자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실시간 바뀌는 모습을 보니 깊어지는 갈등의 균열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싫어요 숫자가 보이지 않도록 바뀌었다고 한다.)


혐오는 생물적인 반응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엄청난 입냄새를 가지고 있다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마음속 한구석에서 싫어하는 마음이 자라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상대방에 대해 혐오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그를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감정을 바꾸기도 어려워 진다.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혐오’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대화와 타협을 진행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혐오와 관련된 직관은 잘해야 쓸데없고 최악의 경우 해롭다"는 저자의 표현에 공감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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