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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식이 갈 곳 어디인가

배달음식 단상

by My Well

한가로운 주말. TV 속 햄버거 광고를 보자마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오늘은 햄버거나 먹어볼까 하고 배달앱에 들어갔다. 검색창에 '햄버거'를 입력하고 배달가능 목록에 뜬 가게들을 스캐닝했다. 신메뉴가 있군. 오늘은 이걸 먹어봐야겠다 하고 빠르게 결제를 마친 후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지 얼마일까. 띵동 소리가 울렸다.


기분 좋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다소곳이 놓여있는 비닐봉지를 냉큼 집어 들었다. 따끈한 햄버거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로 쑥 들어온다. 빨리 세팅하고 먹어야지 하는 순간, 어라?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뭔가 내가 시킨 그것이 아니다. 일단 난 감자튀김을 시키지 않았다. 감튀보다는 치즈스틱, 너겟을 먹는 편이 내 소나무 같은 취향이다. 그리고 버거도 개수만 같지 다른 종류였기에 음식이 잘못 왔다는 것이 분명했다.


작게 한숨을 토하고 영수증에 적힌 고객센터 번호를 눌렀다. 앱에는 채팅으로 문의하는 것이 빠르다고 나와있지만, 전화하는 편이 훨씬 더 빠른 피드백이 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문의가 많다는 대답이 돌아온 지 몇 분 지났을까 드디어 상담원과 연결되었다. 재조리 재배달을 원하는지 아니면 환불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은 불 보듯 뻔하다. 난 음식냄새를 맡은 순간 이미 고독한 미식가처럼 일순간 배가 고파졌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허기를 달래주는 것뿐.


처음 주문을 기다린 만큼 시간이 흘렀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같은 음식을 대하는 자세는 왜인지 좀 더 차분해졌다. 첫 음식을 받았을 때 보다 더 따뜻한 것 같지만 그만큼의 기대는 없다. 그냥 빨리 배고픔을 없애고 싶다. 주소를 잘못 찾은 음식은 여전히 문 앞에 있다. 문 앞에 두라고 했는데 아직인가 보다. 햄버거를 몇 입 베어 물고 배고픔이 달래지니 비로소 이런 건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궁금해졌다.


'고마운 분'에 랭크될 정도로 자주 배달을 시켜 먹는 나는 몇 개월마다 한 번씩은 이런 문제를 겪었던 것 같다. 몇 번은 가게실수로 주문사항이 누락된 적이 있었고, 몇 번은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내 음식이 가있거나 다른 사람과 주문한 음식이 바뀌곤 했다. 신속배달이라는 모토는 짜장면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고객센터는 사건의 발생경위를 따지기보다는 사고 여부만 확인하고 다시 배달을 받을 것인지 취소할 것인지 고객에게 바통을 넘긴다. 이런 고객센터의 대응은 고객의 입장에서는 빠르게 대응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번 건 같이 잘못된 영수증이 붙어있는 경우는 가게의 실수인 것 같은데 시시비비가 적시에 가려질까 하는 걱정이 남는다.


플랫폼(위탁자)과 배달기사(수탁자) 간 적용되는 '약관(사고의 책임과 손해배상 부분)'에 따르면 수탁자의 귀책사유로 상품훼손, 주문취소, 재배달요청이 발생하는 등 배달업무가 완료되지 않는 경우 위탁자는 수탁자에게 배달료 등을 지급하지 않는다. 또 위탁자 또는 수탁자의 귀책사유로 상대방 또는 제삼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귀책당사자는 이로 인한 일체의 손해(주문 취소 등으로 인한 음식대금 등)를 배상해야 한다. 내부적인 판단을 통해 배달료, 음식대금 등을 누가 부담할지 정하는가 보다. 과연 합리적이다. 다만 음식의 유한한 속성 탓에 최후의 귀책자로 지목된 누군가는 먹지 못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구입하게 된다. (특히 여름철엔...)


아직까지 현관문 앞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햄버거의 안부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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