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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리를 지킨다는 것

by My Well

2015년 인터넷 속 나의 글, 아니 나는 사라졌다.


민아는 도토리월드에 줄곧 글을 쓰고 있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작지만 취향껏 꾸며놓은 대문도 있고, 친구 맺기를 한 소수와만 연결된 공간이라는 점이 썩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글에는 나의 일상과 생각이 담길 수밖에 없어서 처음 시작할 때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곳이라면 나를 모르는 불특정 사람들은 굳이 들어와 보지 않을 것이고, 내가 친구라고 명명할 수 있는 사람들만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에 글을 쓰고 싶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는 루틴처럼 배경음악을 하나 틀어두고 도토리월드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어제 쓰던 글을 이어나갔다. 바이올린 선율에 잠깐 정신을 빼앗겼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로 돌아와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갔다. 민아가 쓰는 글은 주로 일기나 에세이였지만 가끔은 소설도 있었다. 미끄러지듯 타이핑하던 것을 몽땅 지우고 다시 적길 몇 번 즈음 반복했을까. 이쯤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결심이 섰을 때 등록버튼을 눌렀다. 달리기를 할 때면 숨이 턱끝까지 차서 다른 생각이 사라지는 것처럼, 글을 쓰다 보면 민아는 현재 쓰고 있는 것과 나아갈 방향, 그리고 방향대로 정확히 쓰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민아는 그래서 쓰는 일이 좋았다.


여느 때처럼 다음 날 출근한 민아는 같은 팀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동료와 함께 밥 먹을 때면 어제 나온 뉴스는 유용한 대화소재였다. 곁들임으로 나온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며 동료가 말을 꺼냈다. 어제 그 뉴스 봤어요? 무슨 뉴스요? 민아는 참 어제 뉴스를 안 봤지 잠시 생각했다. 오늘부터 도토리월드 닫는대요. 네? 민아는 외마디를 내질렀다. 도토리월드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억이 된 지 오래였다. 접속자가 날로 줄었고 황금기와 비교하면 완전히 잊혔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민아에게는 아니었다. 민아는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 탓에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요??


도토리월드의 폐쇄는 과연 사실이었다. 자리에 돌아와 애꿎은 F5키를 연달아 눌러봤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다. 거의 매일 접속하면서 도대체 왜 몰랐을까. 민아는 팝업창이 뜨자마자 '일주일 동안 보지 않기'를 눌러댔던 손가락이 원망스러웠다. 그날부터 민아의 글들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언제 다시 오픈한다는 계획 같은 건 뉴스에서도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화번호조차 남겨져 있지 않은 사이트 대문에는 더 좋은 서비스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문구만 생경하게 남아있었다. 민아는 도토리월드의 폐쇄와 함께 온라인 글쓰기를 중단했다. 쓰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그냥 문서 파일을 켜서 썼다. 나만 볼 수 있었고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토리월드에 썼던 글들과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구나 했다.


문득 잃어버린 흔적에 대해 떠올린 것을 웹서핑을 하다가였다. 뭔가 자신이 썼던 글과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의구심이 생겼다. 도토리월드 폐쇄 전에 내 글을 퍼가요~♡하고 가져간 걸까? 아니면 무단으로 복사해 간 걸까? 그도 아니면 글을 가져가다 일부만 바꾼 걸까? 아니면 그냥 비슷한 글인 걸까? 고심 끝에 민아는 댓글창에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 적혀있는 내용이 제가 도토리월드에 올렸던 글과 유사한 것 같은데 혹시 이 글을 퍼오신 건가요?


며칠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민아도 의구심 어린 질문에 답을 얻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답글이 오면 뭐라고 반응해야 하는지도 고민이었다. 이미 내 글은 사라졌고, 기억은 흐릿해서 완전히 똑같은지도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글이라는 것조차도 그동안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의 바탕하에 만들어낸 것이니 온전한 나의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유사도가 10%라면? 아니 더 높은 20%라면? AI에게 소설을 써달라고 하면 3분 카레보다 빠르게 뚝딱인데. 하지만 내가 의도대로 배열하고 구성한 문장과 단락, 그리고 연결된 총체는 나만의 색을 담을 수밖에 없겠다고 결론지었다.


휴대폰이 띵똥 울렸다. 댓글이 등록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제가 쓴 글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라는 댓글이 비공개로 달려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래서 민아는 이번 일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터전도 옮겼다. 새로운 플랫폼을 찾았다.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작가로 승인받은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승인이 나자마자 그동안 파일에 붙여놨던 글들을 서랍에 담아두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글을 올리기 전엔 항상 따로 백업했고 말미에는 무단 복제 및 배포 금지 문구를 덧붙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더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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