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아볼까? _ (1) 홈스윗홈
아빠는 막 개발된 신도시 A와 B에 청약을 넣었는데 A도시에 당첨되는 바람에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고 했다. 연탄불을 떼야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서울의 낡은 아파트를 떠나 두 아이를 데리고 깨끗이 지은 새 아파트로 들어서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의 나의 그것보다 훨씬 어렸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이후에 몇 번 이사를 갈까 말까 논의는 했을지언정 부모님과 나는 쭉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이 도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나도 자랐다. 엄마 손에 이끌러 다녔던 단지 뒤쪽 유치원 해님반을 떠나 5분 거리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성실히 6년을 보냈다. 중학교는 좀 더 멀리 20분 남짓 걸리면서 리코더나 체육복을 두고 온 날이면 옆반 친구에게 빌릴 수 있는 사회성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까닭에 툭하면 늦잠을 자도 택시를 타서 개근상을 지켰다. 단계를 거듭하며 점점 멀어지던 통학거리는 대학교 때 편도 1시간 30분을 넘기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쯤 되니 멀리 다니는 게 내 운명인가 싶기도 했다. 차라리 아예 멀면 자취방을 구할 명분이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길에 버리는 아까운 시간을 줄여보고자 시간표를 주 3파로 짜고, 듣고 싶은 수업이라도 오버 좀 보태면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늦게까지 약속이 있는 날이면 11시쯤 엉덩이를 들썩이다 급히 막차에 오르거나 아예 동기집이나 휴게실에서 자버리곤 했다. 그렇게 내 집 내 방으로 가는 길은 험했지만 그래도 푸르러서 좋았다. 만원 지하철에서 서있느라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굳이 굳이 집까지 걸어가면서 공원길에 우거진 나무를 구경하고 산책 나온 강아지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래도 몇 번은 살던 곳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생활공간을 바꿨다. 가장 처음은 학교 기숙사였다. 낡은 빨간 벽돌건물의 구식 건물에 해가 쨍쨍한 여름에도 한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비좁은 방에 두 명의 생활영역이 반 이상 겹치면서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친구 만날 시간도 길어지니 즉흥적으로 놀러 갈 수도 있어서 즐거웠다. 두 번째는 자취였다. '자취'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간이형 생활공간이어서 씻고 자고 정도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때부터 음식을 사 먹는 것에 의존했던 것이 습관화된 탓인지 지금도 집에서 외부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몇 번의 가출(?)을 거치고 다시 돌아온 집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이 모여있다. 부모님이 만들어준 평화로운 이곳의 안락함에 녹아든다. 이대로 있어도 될까.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바뀔 것이고, 지금 안락하게 느껴진 것들이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질 날이 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내 영혼이 담긴 집이어야 한다. 내 집 찾기는 그런 의미가 있다.